박근혜 대통령이 문창극씨를 새 총리 후보로 지명한 것은 지난 10일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총리 지명 2주일이 다 되도록 아직 문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안을 국회에 보내지 않고 있다. KBS가 문 후보자의 과거 발언 중 일부 대목을 골라 보도해 '친일(親日)·식민 사관' 논란을 불러일으킨 뒤의 일이다. 문 후보가 왜곡 보도라고 반발하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문 후보자 청문요청서 제출이 보류되자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교육·사회·문화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한 장관 후보자 7명의 서류도 함께 발이 묶여 있다. 두 달 전에 사의(辭意)를 밝힌 정홍원 총리와 이미 교체가 확정된 장관들이 계속 업무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여권에선 당초 지난주 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 때문에 결정이 미뤄지고 있다며 대통령이 21일 귀국하면 곧바로 이 상황을 정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귀국 사흘째인 23일 신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수석비서관 5명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신임 총리·장관 등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 국회와 협조할 일이 많다"며 "그 일이 속히 잘 이뤄져야 국정이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문 후보자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문 후보자는 이날도 임시로 마련된 정부 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 정시 출근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조용히 제 할 일 하면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문 후보자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벌어지는 이런 문답이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새누리당에선 한때 문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박 대통령이 귀국한 뒤엔 사라졌다. 여당 지도부는 이와 관련한 질문이 나오면 손사래부터 친다. 정부와 청와대, 여당 전체가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이라크 내전을 계기로 다시 국제 유가(油價)가 들썩일 조짐을 보이고 있고, 원화 강세에 따른 환율 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경기 회복은 더디기 짝이 없다. 이런 마당에 대한민국 경제팀의 수장(首長)을 사실상 공석 상태로 계속 비워두고 있는 것이다. 전교조는 법원의 법외(法外)노조 판결에 반발해 대규모 집단행동을 준비하고 있고, 민노총 역시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이 문제를 책임지고 풀어갈 신임 사회부총리와 고용노동부 장관은 언제 시작될지도 알 수 없는 인사청문회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총리·장관 임명이 늦춰지면서 해당 정부 부처의 정기 인사도 사실상 중단되는 등 국정 공백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박 대통령은 더 이상 문 후보자 문제에 대한 결정을 늦춰선 안 된다. 대통령 앞에 놓인 선택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문 후보자에게 국회 청문회에 나가 본인이 억울해하는 부분을 소명할 기회를 주거나 아니면 '문창극 총리' 카드를 접는 것이다. 어느 쪽도 쉽지 않은 선택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나라 안팎의 사정이 이 문제 때문에 계속 국정 공백을 이어갈 만큼 한가하지 않다. 어느 쪽이든 이제 결론을 내리고 그 이유를 국민 앞에 당당하게 설명해야 할 때다.

[사설] 軍, 부적응 병사 제대로 가려내 세심하게 돌봐줘야
[사설] 자동차 燃比 부풀리기 따끔하게 처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