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을 읽고 난 느낌은… '역겹다'는 것이었다."

윤해동(55·사진)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는 3년 전 한국사 관련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논문을 검토한 익명의 한 심사위원이 장문의 평(評)을 쓴 뒤, '역겹다'는 말로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내 글이 상당히 심각한 반론에 부딪힐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비학문적'인 심사가 이뤄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논란이 된 윤 교수 논문은 '뉴라이트 운동과 역사인식'. 교과서포럼 출범과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 출간, 한국현대사학회 발족 배경과 의미를 분석한 내용이었다. 뉴라이트 역사 해석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담긴 글이었지만, 일부 한국사 연구자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윤 교수는 15일 전화 통화에서 "뉴라이트 운동을 학문적 토론 주제로 삼은 것부터가 사실상 이 운동을 띄워주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고 했다. 윤 교수 논문에 대해 또 다른 심사위원은 '특별히 보완할 점은 없다고 판단됨'이라는 심사평을 내놓았지만, 이 논문은 결국 그 학술지에 게재되지 못했다.

윤 교수는 지난주 출간한 저서 '탈식민주의 상상의 역사학으로'(푸른역사)에서 논문 심사 탈락 경위를 소개하면서 국사학계가 진영 논리에 갇혀 있어 제대로 된 학문적 논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신이 속한 학문적 흐름과 다른 것과는 학문적 교류도 하지 않고 또 필요하지도 않다고 여기는 학계 현실 속에서, '다른 진영(?)'에 속한 학문적 입장을 객관적으로 비평해야 하는 연구자조차 곧 자신의 적으로 규정해버린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자신의 학문을 윤리적 우위에 두고 자신과 다른 입장을 윤리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학문하는 자세가 아니다"고도 했다. 2012년 한 '진보 정당'에서 벌어진 분란을 보고, 어떤 노동계 인사가 평했다는 말도 인용한다. "현장이 무너진 자리에 '종파'만 독버섯처럼 자란다." 윤 교수는 "학문이 무너진 자리에 '독선'만이 독버섯처럼 자란다"며 한국 인문학도 비슷한 처지가 아닌가 하고 되묻는다.

일제 식민지 시기 연구자인 윤 교수는 민족주의와 민중사관이 압도적인 분위기의 국사학계에서 '제3의 목소리'를 내왔다. 수탈과 저항이라는 구도로 일제강점기를 규정해 온 통념에 맞서 "당시 대부분의 사람은 '친일'과 '반일'의 극단 사이에 폭넓게 펼쳐진 '회색 지대'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연구서(식민지의 회색지대·2003년)를 내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