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외교정책으로 28일 발표한 '오바마 독트린'에 대해, 전문가와 현지 언론들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적극적 개입을 택했던 미국이 '제한적 개입주의'와 '다자적(多者的) 개입주의'로 돌아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통적 고립주의와 적극적 개입주의 사이에서 일종의 '중간 지대'를 찾으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지, 또 바람직한 정책인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직접적인 군사 개입은 자제하면서도 동맹국 지원과 교육,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테러와의 전쟁'을 이어가고 지역 분쟁에 대처하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 방향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신(新)외교정책을 발표한 것은 시리아 사태 개입 실패,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여준 미국의 나약함, 아프가니스탄 철군 지연, 중국의 급부상에 대한 대응 부족 같은 비판을 의식한 측면이 강하다.

(위 사진)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 시각) 뉴욕에 있는 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의장대로부터 경례를 받고 있다. 이날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국제사회에서 미군 개입을 자제하고, 테러 작전 이외의 군사력 사용도 자제하겠다”고 밝혔다. (아래 사진)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21일 상하이에서 열린‘아시아교류 및 신뢰구축 정상회의(CICA)’개막식에서 만나 악수하는 모습. 양국은 최근 중·일 분쟁 지역인 동중국해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부근에서 합동 해상 연합 훈련을 시행하는 등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친(親)오바마 진영은 현실을 직시하는 외교 정책의 필요성에 동의한다.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은 "미국이 모든 분쟁이나 갈등에 군사적 개입을 할 수는 없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설득력 있게 정책 변화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CNN은 오바마 대통령이 "현대적 실용주의는 강한 군대와 외교적 도구, 그리고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제재 수단이 모두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미국을 약하게 만들었다'는 비난에 당당히 맞섰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비판적이었다. 뉴욕타임스는 "기대에 못 미쳤고, 전략도 부족하고, 좌우 진영 모두에서 비판받을 소지가 많은 연설"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도 칼럼에서 "왜 외교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설명만 하고,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독트린(원칙) 없는 독트린"이라고 꼬집었고, 시사주간지 타임은 "아태 지역부터 동유럽까지 미국의 안보보장 능력에 불안을 느끼는 동맹국들에 확신을 주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층은 독설을 쏟아냈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은 "내 평생 본 가장 나약한 대통령"이라고 오바마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중동의 동맹국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 정책에 대해 경고의 신호를 보낼 정도로 미국의 지도력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말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당·애리조나)도 오바마 대통령의 불(不)개입주의와 관련해 "자신이 정해놓은 한계선 때문에 시리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해 16만명이 죽는 내전 사태가 일어났다"며 "미국은 이미 우리의 적들은 물론이고, 동맹국들로부터도 믿지 못할 나라라는 낙인이 찍혔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 중시 정책'을 표방하면서도 이번 연설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은 데 대한 논란도 있다. 특히 북핵(北核) 대처방안 등이 일절 없었다는 점을 두고 미국 내 고위 외교 관계자는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중에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포기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며 "북한 문제가 외교의 후(後)순위로 밀리는 듯한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