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28일 사퇴했다. 지난 22일 총리에 내정되고 1주일 만이다. 안 후보자는 "후보로 지명된 이후 전관예우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로 국민을 실망시켜 죄송하다"고 했다.

안 후보자는 검사 시절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맡아 여야 현역 의원들은 물론이고 당시 정권의 실세들까지 감옥에 보내는 강단을 보여 '법과 원칙'의 상징이 됐다. 또 검사와 대법관의 공직 기간 동안 재산 공개에서 항상 최하위권을 기록해 청렴하다는 평도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그를 '세월호 수습 총리'로 발탁했다. "세월호 사고를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공직 사회의 적폐를 척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국가 개조를 추진하기 위해 안 후보자를 기용했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었다.

그러나 청와대의 발표 직후 안 후보자가 대법관 퇴임 1년 후인 작년 7월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연말까지 5개월 동안에만 16억원, 하루에 1000만원씩의 수입을 올렸음이 드러났다. 안 후보자는 4억7000만원의 기부금을 낸 점을 강조했지만 그중 3억원은 총리 후보 내정 직전에 기부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또 다른 뒷말을 낳았다. 여기에 더해 지금도 현금 5억원을 수표 등으로 갖고 있는 것까지 공개됐다.

'과연 전관예우를 받지 않은 일반 변호사였어도 이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게 가능했겠느냐'는 의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법조계의 전관예우는 판·검사를 그만두고 개업한 변호사에게 후배 판·검사들이 유리한 판결이나 결정을 주는 악습(惡習)이다. 반드시 피해자가 나오게 돼 있다. 이렇게 공직자 선후배들이 서로 봐주다가 세월호 같은 사고가 터졌다. 대통령은 그런 적폐를 없애자고 안 후보자를 지명했는데 안 후보자가 바로 그런 적폐의 상징처럼 떠오르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전관예우의 의심을 받는 총리가 공직 사회 개혁과 더 나아가 국가 개조(改造)의 적임자가 될 수 있는지, 공무원들이 그런 총리를 믿고 자신들의 손해까지 감수하고 따를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안 후보자가 자신이 총리가 돼야 하는 근거를 잃어버린 것이다. 여당 안에서조차 그를 포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안 후보자가 후보직 사퇴를 선택한 건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출범한 지 1년 반도 안 된 정부에서 총리 후보자의 낙마(落馬)가 벌써 두 번째다. 그동안 10명이 넘는 장관·청와대 수석이 임명장도 받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 모두 청와대가 인사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었다. 청와대는 잇따라 인사에서 실패한 뒤 비서실장이 위원장을 맡는 인사위원회를 만들고 인물 검증을 강화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 여전히 검증 장치에 큰 구멍이 뚫려 있음이 확인됐다.

더욱 걸리는 것은 청와대가 국민의 상식적 잣대로만 판단했어도 안 후보자 문제는 충분히 거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누가 봐도 전관예우라고 생각되는 문제를 그냥 넘겼다는 것은 청와대 내부의 인식 자체가 국민과 따로 놀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것이 더 크고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런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비슷한 사고를 칠 것이다. 청와대가 이런 식의 검증 기준과 시스템을 계속 유지한다면 공직사회 혁신이나 국가 개조는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안 후보자의 불명예 퇴진으로 세월호 수습을 위한 박 대통령의 인적 개편 구상은 첫 단계부터 차질을 빚게 됐다. 정치적 타격이란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대통령이 약속한 적폐 척결과 국가 개조의 중요성에 비춰 보면 지엽적이고 부질없는 소리들일 뿐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일에서 오히려 전관예우와 관피아 척결의 동력(動力)을 얻어야 한다. 대통령이 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그런 계기가 될 수 있다. 모든 공직자가 안 후보의 낙마를 지켜보았다. 이제는 통하기 어렵다는 느낌도 가졌을 것이다. 대통령이 안 후보 사퇴를 전관예우와 관피아 일소의 첫걸음으로 만든다면 대통령 자신은 물론 나라를 위해서도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 있다. 그 전제는 대통령이 제대로 된 총리를 다시 찾아내 정부·인사 개혁의 첫 단추를 올바로 채우는 것이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새 총리 후보자는 전관예우와 관피아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인물로 골라야 한다. 필요하다면 다른 정파(政派), 이전 정권의 인물이라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새 총리가 수십 년 묵은 적폐의 실태를 낱낱이 파헤쳐 환부(患部)를 도려낸다면 국민 모두가 박수를 보낼 것이다. 대통령부터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라고 각오하고 다짐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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