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7일 국무회의에서 교육·사회·문화 부총리 신설을 언급하면서 앞으로 내각에 '책임과 권한'을 대폭 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만기친람(萬機親覽)식' 국정운영 방식에서 탈피하겠다는 뜻으로, 박 대통령 통치 스타일의 변화를 예고한다는 관측이다. 이런 기조는 향후 개각(改閣)에도 반영돼 '정무형' '책임형' 인사가 주로 발탁될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이날 "지난 1년여 국정을 운영하면서 국무회의나 총리 주재 국가 정책 조정회의만으로는 부족함이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면서 "그래서 이번에 교육·사회·문화를 총괄하는 부총리를 두어서 정책 결정에 효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장관들의 책임성'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지금 사회가 너무 복잡하고 이전과 다른 규모와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면서 "(분야별로) 전담을 해나가야 책임성이 생기고 또 국정 운영이 효율적이 될 것이란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총리는 법질서와 공직사회 개혁, 사회안전, 비정상의 정상화 등 국정 어젠다를 전담해서 소신을 갖고 국정을 운영하도록 하고, 경제부총리는 경제 분야를, 교육·사회·문화 부총리는 그 외의 분야를 책임지는 체제를 갖추고자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향후 정부조직법이 개정되면 '2년 차 박근혜 정부'는 총리와 두 부총리, 국가안보실장이 각 분야 국정을 끌고 가는 '4각(角)'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 국무회의 발언은 '권한을 나눠줄 테니 책임 행정을 해달라'는 의미"라면서 "특히 세월호 사고 이후 대통령의 생각이 좀 바뀐 것 같다"고 했다.

비어있는 총리 자리…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 오른쪽에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총리 자리가 비어 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은 빈번하게 도마에 올랐다. 대표적인 것인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고개를 숙이고 대통령의 말을 받아 적는 모습이었다. '적자생존'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모두(冒頭)발언 공개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외부로 전달해 왔다"면서 "그러나 TV에 비친 회의 모습은 국민에게 '장관과 수석들은 허수아비'라는 인상을 심어 줬다"고 했다.

대통령의 모두발언은 대부분 청와대 수석과 각 부처에서 사전에 올린 자료를 근거로 작성된다. 자신들이 알 만한 내용임에도 회의 참석자들은 받아적기 바빴다. 그래서 "대통령 뒤에 다른 비선(秘線) 보좌그룹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왔다.

최근 청와대도 이런 상황이 문제라고 느끼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스타일'을 바꾸기로 마음먹은 이상 앞으로 회의 풍경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박 대통령의 '변화'는 향후 개각에도 그대로 반영될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청와대와 내각에 '과제 수행형' 참모로 분류될 수 있는 관료·교수 출신들을 다수 배치했었다. 그러나 "장관은 청와대만 쳐다보고, 수석은 대통령만 쳐다본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평가는 좋지 못했다. 이 때문에 내달로 예정된 개각에서는 관료·교수 출신보다는 현안을 돌파할 수 있는 '정무형' 인사들이 대거 기용될 가능성이 꽤 큰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의 변화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민심(民心)에 대한 반응"이라고 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자신의 노선을 지키기 위해 웬만한 비난도 감수하는 스타일이지만 최근 세월호 국면을 겪으면서 '나부터 내려놔야 한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고 했다.

물론 박 대통령이 정말 바뀌겠느냐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가진 이도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책임총리제'와 '책임장관제'를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 출범 이후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졌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대통령이 하나하나 챙기면서 '깨알 리더십'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내각이 실질적 권한을 가지려면 청와대의 개입을 줄이고 총리와 부총리의 권한도 더 명확해져야 한다"며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박 대통령은 이날 "(총리 등 4명이) 각 분야를 책임지는 체제를 갖추고자 한다"면서 "그와 같은 내용도 정부조직법에 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는 법제화를 통해서 총리와 부총리의 권한을 명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여권 관계자는 "국정 운영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는 요청이 그동안 여러 경로로 청와대에 전달됐다"며 "앞으로 반영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