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응급의료센터에 구급차가 전용출입구로 들어서고 있다. 지난 5월 10일 자정 무렵 오른쪽 유리창 안쪽에서 이건희 회장은 심폐소생술 등을 받았다.

사람들 대부분이 5월의 한가로운 주말 밤을 보내고 있던 지난 5월 10일 밤 10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과 한남동에서는 촌각을 다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이태원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순천향대병원 응급의료센터로 후송됐다. 삼성서울병원의 발표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응급의료센터에 도착한 직후 심장마비 증세를 보여 응급 심폐소생술을 받았고, 신속한 초기 대응 후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세간에 ‘골든타임’ 4분이 화제다. 초기대응이 ‘4분’ 안에 이뤄져 이 회장의 생명을 구했다는 얘기다.

5월 10일 토요일 오후 10시대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조선일보 5월 13일자 기자수첩은 이 회장이 순천향대병원 응급실로 가기 전까지의 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했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 기사 일부분이다.

‘이건희 회장은 9시쯤 이태원동 자택에서 체한 것 같은 증세가 나타나 소화제를 먹었다. 그러다 등 쪽으로 묵직한 통증이 발생했고 이어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쓰러졌다고 한다. 이는 전형적 심근경색 증세이다. 심장근육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혀 심장박동이 멈출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비서진은 인근 순천향대병원에 연락하고 응급조치를 하며 이 회장을 차에 태워 갔다.’

‘골든타임’ 4분을 세 가지 관점에서 보자. 첫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게 이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킨 상황에서 가족이 순천향대병원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는 주치의도 있고 이 회장의 모든 진료기록이 있다. 그러나 자택에서 삼성서울병원까지는 시속 100㎞ 이상으로 달려도 25분이 걸린다.

이태원동 집에는 부인 홍라희씨(리움미술관 관장) 외에도 간호사, 경호원, 운전기사, 집사를 비롯한 비서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집에는 비상용 구급차가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이 회장 측은 1분1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삼성서울병원이 아닌 순천향대병원 응급의료센터를 향해 달려갔다. 서울병원에 앞서 순천향대병원으로 가기로 결정한 것은 간호사의 판단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두 번째는 자택에서 순천향대병원 응급의료센터까지 최단시간에 주파했다는 사실이다. 이 회장의 집은 용산구 이태원로 27라길이다. 순천향대병원의 도로명 주소는 용산구 대사관로 59. 삼성서울병원 측은 직선거리 1.5㎞를 3분 만에 달려 응급실에 도착했다고 발표했다. 이 회장은 순천향대병원 응급의료센터에 도착한 직후 심장마비가 왔다. 이에 응급실 전문의가 즉각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만일 이 회장이 심하게 흔들리는 구급차 안에서 심장마비가 왔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이 회장 자택에서 순천향대병원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용산소방서 119안전센터’ 앞길로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리움미술관을 지나가는 길이다. 리움미술관 앞길을 지나는 코스는 우회하는 노선이다. 1초를 다투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운전기사가 우회로를 선택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기자는 이 회장 자택에서 취재차량을 타고 이태원로 27길을 내려가 ‘119소방서’ 앞길, 즉 이태원로를 지나 순천향대병원으로 가보기로 했다. 스마트폰의 스톱워치 기능을 이용해 시간을 재보았다. 첫 번째 시도에서 4분20초가 걸렸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4분40초가 걸렸다. 자택에서 병원까지의 정확한 거리는 1.8㎞.

두 번 모두 이태원로 27라길을 곡예하듯 차를 몰아 ‘119소방서’ 앞길, 즉 이태원로에 이르렀지만 신호가 걸려 40~50여초를 대기해야만 했다. 이태원로의 언덕마루를 지나면 제일기획을 오른편에 두고 횡단보도가 있다. 두 번 모두 이 횡단보도에서 20여초를 대기했다. 순천향대병원으로 가는 대사관로는 좁고 경사가 가파르다. 과속방지턱이 3개 있다.

다시 이 회장 자택에서 이태원로에 이르는 길을 찬찬히 살펴보자. 이 회장 자택 앞길, 그러니까 이태원로 27라길은 차 두 대가 겨우 교행할 수 있는 좁은 골목길. 또한 도로 표면은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움푹 파인 곳을 땜질하듯 기운 곳이 여러 군데 있었다. 좌우상하 흔들림이 상당했다. 도로 상태를 무시하고 급히 차를 몬다면 이 회장을 눕힌 비상침대 역시 심하게 흔들렸을 것이다.

이태원동 일대는 도시계획 이전에 형성된 구시가여서 경사가 가파르고 도로가 꾸불꾸불하다. 이태원로 27라길 초입 에 있는 이태원삼성어린이집까지는 과속방지턱이 5개나 있다. 지리와 도로 사정에 밝지 않으면 이태원로로 내려오기 전까지는 속도를 내기가 힘들다.

두 차례 시도한 결과 이 회장 자택에서 ‘119소방서’ 앞길 신호등까지는 각각 2분20초와 2분30초가 걸렸다. 그날 밤 경광등과 비상 사이렌을 켠 구급차는 신호를 무시하고 좌회전을 해 이태원로로 들어서 질주했고, 역시 제일기획 앞에서 또 한 번 신호를 무시하고 우회전을 해 대사관로로 들어갔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택에서 병원까지 도달하는 데 3분~3분10여초가 걸릴 것이다. 급성 심근경색 환자에게 동반되는 게 심장마비. 심장박동이 멈추는 심장마비 증세가 나타나도 4분 이내에만 응급처치를 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 회장을 태운 구급차는 최소 3분10초 이내에 응급의료센터에 도착했다는 얘기다.

마지막은 순천향대병원 응급의료센터가 완벽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순천향대병원은 지난 4월 9일 응급의료센터를 새단장했다. 대사관로에서 응급의료센터는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응급환자 전용출입구를 따로 만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에 심폐소생술(CPR)방이 출입구에서 가장 잘 보인다. 순천향대병원 응급의료센터는 응급의학과 박준범·이영주·장혜영·조영신 전문의 4인이 4교대로 24시간 근무한다.

이 회장은 응급의료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심장마비 증세가 나타났고, 응급의학과 전문의 장혜영씨는 즉각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장혜영씨는 이어 이 회장 몸에 에크모를 달았다. 순천향대병원에서 다시 구급차에 탈 때 걸리는 시간 1~2분, 구급차에서 내려 삼성서울병원 응급센터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 1~2분 사이에 혹시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것에 대비한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은 5월 11일 “순천향대병원 의료진이 초기에 신속하고 적절한 처치를 잘했고, 삼성서울병원에서 시행한 스텐트 시술도 성공적이어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반인에게 주목을 끄는 병원이 대사관로 59번지에 있는 순천향대병원이다. 정확한 공식명칭은 순천향대서울병원. 대사관로라는 도로명처럼 이 근처에는 대사관과 대사관저가 많이 몰려있다. 이 회장이 의식을 회복한다면 1등 공신은 순천향대병원을 선택한 간호사와 순천향대병원 응급의료센터다.

순천향대병원 측이 응급환자 중심으로 응급의료센터를 재정비한 것이 이번에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기자는 장혜영 전문의를 만나 당시의 상황을 듣고 싶었으나 순천향대병원 측은 협조를 거부했다. 병원 측은 응급의료센터 내부 촬영도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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