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일본 헌법은 2차대전 패배 직후인 1946년 개정·공포됐다. 전쟁을 일으킨 책임으로 일본의 전력(戰力) 보유와 전쟁을 금지한 이른바 '평화헌법'이다. 이에 처음 손을 대려 한 이가 바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사진) 전 총리였다. 그는 아베 총리가 평소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정치가다.

종전 후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됐다가 풀려난 뒤 1957년 총리에 오른 기시의 숙원은 미·일 안보조약에 의해 제한됐던 패전국 일본의 '독자적 외교권'을 되찾는 것이었다. 그는 1960년 이 조약의 개정안에 미국과 합의한 뒤 국회에서 독단으로 강행 처리했으나 일본의 전쟁 개입을 우려한 국민 반대 운동에 부딪혀 실각했다. 당시 그는 "새 안보조약에 대비한 자주국방이 필요하다"며 평화헌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각 후 1987년 91세로 눈 감을 때까지 결국 개헌의 꿈을 이루진 못했다.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1993년 39세 나이로 중의원에 당선된 외손자 아베가 뜻을 이어받았다. 그는 관방 부장관으로 발탁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개헌을 주장해왔다.

2006년 처음 총리가 된 직후 자문기구 '안보 법제 간담회'를 설치해 집권 1년간 개헌 논의에 불을 지폈고, 2012년 말 재집권하면서 이 기구를 부활시켜 본격적으로 개헌을 추진했다.

아베 총리는 개헌에 대한 반발이 거세자 결국 15일 내각회의 결정으로 헌법 해석을 바꾸는 소위 '해석 개헌'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해석 개헌만으로 평화헌법을 무력화할 수 있는 만큼 이는 사실상 개헌과 다름없는 효과를 갖는다.

50여년 전 외조부가 개헌 명목으로 내세운 '자주국방'을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말로 바꿔 일본 재무장(再武裝)에 나서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