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 삑! 삑!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안내에 따라 침착하게 대피하세요."

13일 오전 11시4분께 서울 강남구 삼성동 트레이드타워 건물에 짧은 호루라기 소리가 퍼져나갔다. 이어 '화재가 발생했으니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모의 훈련인 탓인지 화재를 알리는 안내방송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미리 '오늘 오전 11시에 화재 대피 훈련을 한다'는 공지가 없었다면 한 귀로 흘려듣고 말았을지도 모를 정도로 안내방송 소리가 크진 않았다.

이 건물 46층에 있던 기자도 안내에 따라 비상계단을 향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비상계단 문을 열어 젖히자 한 직원이 화장실에서 손을 닦을 때 사용하는 휴지를 나눠줬다.

휴지로 코와 입을 막았지만 '실제 상황에선 물에 젖은 손수건 등이 필요할텐데'라는 아쉬움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미 윗층에서 내려온 직원들로 비상계단은 가득찼다. '대피반'이 쓰여진 노란색 깃발을 든 한 남성이 이마에는 휴대용 전등을, 손에는 경광봉을 들고 같은 회사 직원 한 무리를 이끌었다.

한층 두층 비상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점점 숨이 차 올랐다. 온몸에 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코와 입을 막았던 휴지는 어느덧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있었다.

실제 상황이 아닌 탓인지 훈련에 임하는 직원들은 많지 않았다. 빽빽하게 들어찰 것이라고 생각했던 비상계단에는 기자 혼자 뿐이었다.

하지만 폭이 1m 남짓인 비상계단 자체도 실제 상황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트레이드타워의 160개 회사 4000여명이 동시에 몰린다면 또다른 참사가 벌어질수도 있다는 아찔한 생각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았다.

또 문은 비상계단 방향으로 열리는 탓에 미리 대피하던 사람과 부딪힐 확률도 있었다. 심지어는 곳곳에 문이 비상계단에서 건물 내부 방향으로 열리지 않았다. 중간 층으로 대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꼼짝없이 갇히게 될 처지였다.

안내방송이 나온지 15분여가 지나서야 대피훈련에 참여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대부분 느긋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리면서 총총걸음으로 비상계단을 내려갔다.

땀으로 옷이 흠뻑젖은 기자는 20분 만에 1층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다리는 쥐가 날 듯 했다.

40~50분 걸릴 것이라는 코엑스 측의 예상은 빗나갔다. 훈련에 참여한 인원이 적은 탓이다. "사실 직접 대피하는 훈련은 처음이다보니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계산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트레이드타워에서 밖으로 대피한 직원들은 1000여명.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소화기 사용법이나 심폐소생술 훈련을 받았다. 대부분 젊은 직원들 뿐 임원들로 보이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최근 세월호 참사와 지하철 추돌사고 등 안전사고들이 잇따른 탓인지 이들 대부분은 이번 훈련이 큰 의미가 있다는 분위기였다.

47층에서 10여분 만에 대피한 송모(28)씨는 "모의 훈련이다 보니 조금 느슨하게 진행됐다"면서도 "아무래도 직접 몸으로 겪어보니 실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할지 조금 감이 잡혔다"고 말했다.

김모(32)씨는 "실제 상황에 가깝게 '몇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식으로 훈련이 진행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실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매뉴얼을 주기적으로 교육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코엑스 측은 이번 훈련을 통해 드러난 문제점들에 대해서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코엑스 측은 "최근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보고 1년에 22차례 진행하는 소방훈련보다 직접 대피훈련을 체험함으로써 '안전'을 강조하고자 했다"며 "트레이드타워 직원 4000여명 중 1000여명이 참여한 것은 상당히 많은 숫자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늘 훈련을 통해 드러난 문제점들을 앞으로 점검할 예정"이라며 "개정된 소방법상 중간 층에 안전 대피 장소를 마련해야하는데 리모델링을 통해 설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화재 대피 훈련은 40여분 만에 모두 끝났다. 참가했던 인원들은 모두 마음 한켠에 '안전'이라는 두글자를 되새기고 다시 생업의 현장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