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수학 공식을 활용한 작품 앞에 선 브네. (아래 사진)브네가 수학을 미술에 접목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직접 그려준 수학 그래프(오른쪽)와 구상화 이미지.

수학은 차가운 머리에서 나온 학문이고, 미술은 뜨거운 가슴에서 나온 예술이다. 감성의 대척점에 놓인 이 두 장르의 접목을 50년 가까이 시도한 작가가 있다. 1966년부터 수학 공식, 도표를 미술 소재로 써온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브네(73)이다.

7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열린 개인전 개막식 참석차 방한한 브네는 기자와 마주 앉자마자 종이를 펼쳐 수학 함수 그래프를 그렸다. 그 옆에 사람 얼굴 모습의 구상화, 형체를 알 수 없는 추상화 이미지를 나란히 그렸다. "한번 보라. 구상은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추상은 보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 해석이 다르다. 반면 수학은 해답이 하나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거다. 이게 단의성(單義性·monosemy)이다. 나는 전통적인 회화 기법인 추상과 구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예술을 하려고 수학의 단의성을 활용했다."

개념미술의 대가인 그는 왜 수학을 미술에 끌고 왔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개념미술이란 이미지 이면에 존재하는 미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장르다. 그에겐 그 탐구의 도구가 바로 수학이었다.

이번 전시엔 오스트리아 수학자 쿠르트 괴델(1906~1978)의 '불완전성 정리'를 활용해 만든 회화 작품도 전시됐지만 주를 이루는 건 2011년부터 해온 '그립(GRIB)' 시리즈이다. '그립'은 '낙서'를 뜻하는 프랑스 단어 'gribouillage'에서 온 말. 제목 그대로 작품은 어린 아이가 휘갈겨 그린 듯한 형태다. 철제 부조로도 만들어졌고 드로잉으로도 표현됐다. 1979년부터 파고든 '비결정적인 선(Indeterminate Lines)'이란 테마의 연장선에서 시도된 작품들이다. 당시 브네는 직선, 호, 각 등 기하학을 작품에 도입했다가 선을 자유롭게 풀어 헤친 형태를 시도했다. 브네는 "'그립'은 자유롭고 거칠며 아름다운 제스처"라고 했다.

브네는 요즘 예술가들의 나태를 꼬집었다. "요즘 작가들의 작품은 모두 엇비슷하다. 모두들 미술책이나 예술품을 보고 영감을 찾기 때문이다. 폴 세잔이 식물학자여서 꽃과 나무를 그린 건 아니다. 다른 영역을 봐야 한다." 그는 "진정한 예술가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자기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개성의 포화 시대,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기란 어렵지 않으냐고 묻자 브네가 답했다. "뭐가 어려운가. 둘러봐라. 세상에 생각할 거리가 얼마나 많은데(There are so many things to think)." 전시 6월 15일까지. (02)2287-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