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불안해하고 있어요. 학교 건물 옹벽이 무너지지 않게 보강 공사해 주세요!"(서울 환일고 학부모)

"재개발 철거 공사 때문인지 안전 진단 결과를 기다려보자고요!"(만리2주택 재개발조합)

휴일인 27일 오전 서울 중구 만리동 환일중·고교(학교법인 운화학원)에서 학부모들과 주택재개발조합 관계자들 사이에서 승강이가 벌어졌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이날, 학부모들은 옹벽 아래 흙이 비에 쓸려 내려가면 위험하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재개발조합 측은 안전 진단을 실시한 후 위험 여부와 책임 주체를 확인하자고 맞섰다. 서울시교육청은 폭우 때 환일고 옹벽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만리2주택 재개발사업조합에 즉각적인 안전 조치를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서울시교육청 사상 첫 '안전 조치' 명령

중학생 270여명과 고교생 1250여명이 재학 중인 환일 중·고교는 만리동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비탈에 있는 학교 건물은 돌로 쌓은 옹벽 위에 건설됐다. 원래 옹벽 옆으로 낡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하지만 재개발로 최근 이곳의 집들이 헐렸다. 집이 사라지면서 학교 옹벽이 외부로 고스란히 드러났고, 옹벽 일부의 벌어진 틈을 본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 불안감이 커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지난 15일 서울시교육청은 환일중·고교 옹벽 보강 공사를 하라는 안전 조치 명령을 만리2주택 조합에 내렸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라 시교육청이 안전 조치 명령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 안전과 직결된 학교 건물이 큰 피해를 당할 수 있다고 판단해 명령을 내렸고, 이행 기한으로 제시한 다음 달 말까지 주택조합 측이 옹벽 보강 공사 등을 하지 않으면 강력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전 조치 명령을 따르지 않더라도 제재 수위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재개발 관련 허가권을 가진 서울 중구청은 "갑작스러운 붕괴 위험은 없어 보이므로 안전 진단 결과를 보고 옹벽 보강 공사를 해도 늦지 않다"며 서울시교육청과는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 환일 중·고교의 옹벽이 푸른 방수 천막으로 가려져 있다. 최근 재개발 부지에서 철거 공사가 진행되면서 학교 옹벽이 외부로 드러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학교는 '대피 매뉴얼' 만들어

재개발조합 측은 "학교 옹벽에 틈이 생긴 것은 건물이 60년 이상 지났기 때문이지, 최근의 철거 공사 탓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조합 관계자는 "오래된 옹벽을 보고 학생 안전이 걱정돼 학교 측에 보강하라고 말해줬는데, 오히려 철거 공사 때문이라며 학교가 해야 할 옹벽 보강 공사를 재개발조합 책임으로 떠넘긴다"고 말했다. 조합은 철거 공사 때 학교 옹벽엔 손도 대지 않았고 오히려 옹벽 아래에 흙을 더 채워 안전을 꾀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장을 조사한 시설관리 전문가는 "옹벽을 직접 건드리지는 않았다 해도 건설기계로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옹벽의 지반을 진동시키는 등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조합은 "다음 달 중순에 나오는 안전 진단 결과에서 학교 옹벽이 위험하고 그 원인이 철거 공사 때문인 것이 입증되면 그때 가서 옹벽 보강 공사 등 안전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학생들 안전을 위해서는 학교 옹벽의 안전 조치를 하루라도 앞당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학교 측은 갑작스러운 폭우로 흙모래가 쓸려 내려가면서 건물을 지탱하는 옹벽이 무너져내리는 상황을 가정해 대피 매뉴얼까지 마련한 상태다. 건물 붕괴 조짐이 보이면 5~7층의 중학생들은 교실에서 가장 가까운 계단을 통해 내려와 중앙현관으로 대피하고, 1~3층의 고교생들은 1층 계단을 통해 운동장으로 빠져나오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한 학부모는 "고1 아들이 이 건물에서 공부하는데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더더욱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며 "학교 건물은 안전에서 소외된 사각지대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