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인 성격에 업무 성과도 뛰어나 회사에서 인정받는 '열받아' 부장의 유일한 단점은 욱하는 성격이다. 털털한 성격에 목청도 크고 욕도 잘했는데, 요새는 회사에서 직원들을 인격적으로 모욕하면 안 된다고 하도 뭐라고 해서 참느라고 참는다. 하지만 전화기를 아예 꺼두고 받지도 않는 직원 때문에 열을 받았다. 업무상 급할 때는 새벽에라도 전화해서 물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책임감이 있다면 전화는 켜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열받아 부장은 튀어나오는 욕설을 겨우 참고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 채 "에이**"이라고 한마디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직원들이 '우리가 그렇게 욕을 먹을 만한 사람이냐'며 인사부에 항의했다.

열받아 부장이 유능하고 평소 직원들에게 잘해준다 해도 이런 말을 한 번 하고 나면 말짱 도루묵이다. 직원들은 이런 부장 곁에 오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건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열받아 부장이 어느 날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크게 다쳤다. 뇌에 외상을 입으면 종종 성격이 변해서 고집이 세지고 과격해지는데 평소 욱하는 성격이 더 강해졌다. 그를 돌보다 지친 가족은 조금씩 그를 멀리하더니 결국은 시골로 보내버린 뒤 연락을 끊어버렸다.

이런 사례는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내가 갑자기 사고를 당하면 누가 나를 도와줄까. 형제? 자녀? 배우자? 부모? 직장 동료? 이웃? 술친구? 병원에는 정말 별의별 상황이 다 있다. 금슬 좋은 부부인 줄 알았는데 회진을 돌 때 아무도 없어서 물어보면 배우자가 보상금을 받은 뒤 야반도주했다는 황당한 사연도 있다. 교통사고나 산업재해를 당한 뒤 보상금을 받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그러나 그 돈을 옆에서 관리해주고 나를 위해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액수가 커도 소용이 없다. 아니,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고 접근할 것이므로 그 돈이 오히려 나를 더 위험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미래의 불행에 대비해 이런저런 보험에 가입한다. 하지만 정작 어려울 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가까운 사람에게는 '보험'을 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이제라도 사람에 보험을 들자.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소용이 없다. 손을 죽 뻗어서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거리를 환경심리학에서는 '안전 거리' 또는 '개인 공간(personal space)'이라고 한다. 안전 거리 안에 내가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으면 그 제곱에 비례해서 행복해진다. 하지만 안전 거리 안에 믿을 사람이 없으면 더없이 외로워진다. 안전 거리 안에 있는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가 가장 아프다.

생명보험도 건강할 때 미리 가입해두어야 하는 것처럼 사람에 드는 보험도 평소에 잘 하는것이 중요하다. 오래 납입할수록 보험금 수령액이 많아지는 것처럼 사람에 드는 보험도 꼬박꼬박 규칙적으로 오래 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 보험료는 따뜻한 눈길일 수도 있고, 친절한 한마디 칭찬일 수도 있다. 가까운 사람에게 평소에 내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주중엔 일 때문에 바쁘다면 주말에라도 안전 거리 안의 사람들에게 보험료를 내야 한다. 내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어떤 이야기든 나눌 수 있는 사람, 그들에게 들어놓은 사랑의 보험이야말로 가장 혜택이 큰 소중한 보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