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사람이 '누구는 애 없어? 애가 아프면 엄마한테 맡겨'라고 하면 애가 걱정돼도 집에 갈 생각은 아예 접습니다."

13일 오전 경기도 파주 영산수련원에 56명의 아빠가 모였다. 한국일가정양립재단이 주관하는 '해피 파더 페스티벌' 1박2일 캠프에 참가한 아빠들이 캠프 둘째 날 '왜 우리나라 남성이 일·가정을 양립할 수 없나'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외국계 IT 기업에 다니는 김충환(40·가명)씨는 "상사 눈치 보느라 밤 11시에 퇴근하기 일쑤"라면서 "자녀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려고 이 캠프에 왔지만, 일요일인 오늘(13일)도 오후엔 일하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13일 오후 경기도 파주 영산수련원에서 한국일가정양립재단이 주관한 ‘해피 파더 페스티벌’ 캠프에 참가한 아빠와 자녀들이 말뚝박기 놀이를 하고 있다. 캠프에 참가한 아빠들은 “직장 문화 때문에 일과 가정을 동시에 챙기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회 사회자가 "스웨덴은 프렌디(friend와 daddy의 합성어)가 많다. 자녀가 만 8세가 될 때까지 부부가 의무적으로 휴가 480일을 나눠 써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난해 육아휴직을 쓴 남성은 3.3%뿐"이라고 하자 아빠들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행법상 유급 육아휴직 기간은 엄마와 아빠가 각각 1년씩 쓸 수 있다. 나아가 정부는 지난 2월 '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주기별 경력 유지 지원 방안'을 발표하면서, 남성들의 육아휴직을 독려하기 위해 올해 10월부터 부부 중 두 번째로 육아휴직을 하면 첫 1개월은 통상임금의 100%(최대 150만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무리 제도가 있어도 우리나라 특유의 직장 문화 때문에 유명무실하다는 것이 아빠들 얘기였다. 이날 토론회에서 정부의 각종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56명 중 절반(50%)이 '인사에 영향이 있을까 봐'라고 답했고, '동료에게 업무 부담이 갈까 봐'(18%), '해고될까 봐'(9%) 등의 이유를 댔다. 대기업 영업사원 강모(40)씨는 "근무시간에 담배 피우고 커피 마시면서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보내고, 인사고과에 불리할까 봐 회사에 밤까지 남아야 하는 근로 관행이 너무 비상식적"이라면서 "나도 일찍 퇴근해 내 아이랑 놀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일가정양립재단이 캠프에 앞서 아빠 54명에게 '자녀 양육을 할 수 없는 이유'를 사전 조사했더니 대다수(79%)가 '시간이 부족해서'라고 답했다. 구체적인 이유로 '장시간 회사 일을 하기 때문'(40%), '퇴근 후 업무 때문'(9%), '일로 인한 육체적 피로'(5%), '업무 후 늦은 귀가'(5%) 등 직장 관련 답변이 주를 이뤘다. 김모(38)씨는 "회의 때마다 상사가 '회사 돈 받는 사람은 집 생각을 하지도 말라'고 해 매일 밤 11시 넘어 퇴근한다"고 했다. 이상현(42)씨는 "종일 직장에서 스트레스받으니 자녀 일은 오롯이 아내 몫"이라고 했다. 김영주 한국일가정양립재단 상임이사는 "남성 근로자가 충분히 자녀를 돌보도록 시간을 주는 것도 기업이 사회에 공헌하는 길"이라면서 "정부와 기업은 남성 근로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