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말레이시아항공 보잉 777 여객기(MH370)가 실종된 후 항로, 추락 지점, 사고 원인 등 모든 것은 미궁에 빠졌다. 미국, 중국을 포함한 25개국이 정찰기와 함정을 파견해 수색을 벌였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해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정작 여객기가 남인도양에 추락했다는 사실을 밝혀낸 건 영국의 인마르샛(국제해사위성기구·Inmarsat)과 영국 항공사고조사기구(AAIB)의 과학자들이었다. 나지브 라자크 말레이시아 총리는 24일 추락 사실을 공개 발표하면서 이곳 과학자들이 "전례가 없는(never before used) 방식으로 조사·분석해 비행기의 항로를 밝혀냈다"고 말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이 과학자들이 분석에 사용한 도구는 바로 '도플러 효과'였다. 사고 비행기가 발산한 단 5번의 전파 신호를 도플러 효과로 분석해 북방 항로가 아니라 남방 항로로 비행한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영국 런던의 인마르샛 본부에서 대형 화면을 통해 말레이시아 여객기의 경로를 추적하는 모습. 인마르샛은 인공위성에 잡힌 여객기의 신호(ping) 전파를 분석해 여객기가 남인도양으로 비행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도플러 효과는 일상생활에서도 접할 수 있는 물리 현상이다. 소방차가 가까이 다가올 때엔 경적 소리가 크고 빠르게 반복되지만 멀어질 때엔 작고 느리게 반복되는 것처럼 들린다. 이는 물체의 이동에 따라 소리의 파장이 달라지기 때문에 생긴다. 똑같은 원리가 빛이나 전파에도 적용된다. 물체가 가까이 다가올 때는 전파의 파장이 짧아지고, 멀어지면 전파의 파장이 길어진다.

원래는 여객기에 달린 ACARS(항공기운항정보 교신시스템)가 비행 위치를 관제센터에 자동으로 전송하지만, 사고 여객기는 누군가에 의해 ACARS가 꺼졌기 때문에 분석가들의 손에 남은 건 비행기가 1시간마다 자동 전송하는 단순 전파신호(ping)뿐이었다. 여기에는 위치, 고도, 비행 정보가 전혀 담겨 있지 않고 그저 '비행기가 날고 있다'는 정보만 있었다.

두 기관의 과학자들은 교신 중단 이후 여객기가 내보낸 5차례 신호의 주파수 속에 숨어 있는 도플러 효과에 착안해 조사를 시작했다. 비행기의 속도 때문에 비행기에서 발산한 전파의 파장은 위성에 가까워지면 미세하게 짧아지고, 반대의 경우엔 미세하게 길어진다. 위성이 수신한 여객기 전파의 파장이 짧아졌다가 길어졌다는 것은 해당 비행기가 위성이 떠 있는 쪽을 향해 지나갔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인마르샛은 비행기의 항로가 남쪽이었다고 최종 확정할 수 있었다〈그래픽〉.

좀 더 구체적인 비행경로를 밝히는 데엔 추가 분석이 필요했다. 과학자들은 일단 같은 항로를 비행하는 보잉 777 여객기가 같은 위성에 같은 파장의 전파를 보낼 것이라는 전제로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남인도양의 항로마다 여객기들이 위성에 보낸 전파 파장을 모델화한 뒤 이를 사고 여객기가 보낸 전파 파장과 비교했다. 그 결과 추정 항로의 오차 범위를 160㎞까지 좁힐 수 있었다. 이렇게 나온 경로에 여객기가 착륙할 만한 섬이나 육지가 없기 때문에 여객기는 추락했고, 승객 239명이 전원 사망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