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횡령·배임 같은 비리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는 물론 대주주의 전횡을 눈감아준 임원에 대해서도 이사 선임에 반대하기로 했다. 특정 기업에 10년 이상 재임하거나 이사회 출석률이 저조한 사외이사의 연임(連任)에도 제동을 걸겠다고 한다. 국민연금이 앞으로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는 방향으로 의결권 행사 지침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작년 11월 말 현재 84조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 등 간판 대기업들의 1대 주주나 2대 주주로 올라 있고, 5% 이상 지분을 소유한 상장 회사도 218곳이나 된다. 국민연금이 맘먹고 의결권을 행사하면 국내 기업 경영에 큰 파란을 불러올 수 있다.

국민연금의 투자 성과는 국민 대다수의 노후(老後) 보장이 걸려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국민연금이 투자 수익을 높이기 위해 총수의 비리에 책임을 묻고 대주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는 잘못된 경영 행태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이 더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 캘리포니아·네덜란드 공무원연금 등 외국의 많은 공적(公的) 연금은 오래전부터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주주 권리를 행사하려면 누가 봐도 인정할 만큼 독립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특정 기업이 정권에 밉보였다거나 실력자의 눈 밖에 나 보복을 당했다는 뒷말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지금도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은 포스코·KT·KB금융지주 같은 민간 기업의 최고 경영인과 사외이사 인사까지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까지 나서면 민간 기업 인사와 경영에 정부 개입이 훨씬 심해질 게 뻔하다. 정치권과 이익 집단들이 대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국민연금의 완력(腕力)을 끌어들이는 일도 다반사로 벌어질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연금 이사장을 비롯, 연금기금운용위원회 주요 간부들이 줄줄이 교체됐다. 이번 정권 들어서도 국민연금의 어느 인사가 누구 줄을 잡고 내려왔다는 잡음이 무성하다. 국민연금이 실제 주인인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정권의 입맛에 맞춰 주주권을 행사하는 일이 없도록 확실한 안전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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