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 궈 라이 바(快過來吧·이쪽으로 오세요)."

지난 17일 오후 서울 경복궁. 작은 깃발을 든 여행 가이드가 소리치자 경내 국립민속박물관 관람을 마친 요우커(중국인 관광객)들이 다음 장소를 향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인근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이미 끝난 시간이었지만 경복궁은 여러 무리의 중국인 관광객으로 붐볐다.

요즘 경복궁을 방문하면 여기저기서 쉽게 중국말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곳에서 일본말을 접하긴 쉽지 않다. 반대로 창덕궁에 가면 조곤조곤한 일본말을 들을 기회는 많지만 중국인을 찾아보긴 힘들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고 있다.

본지가 입수한 서울시의 '서울 관광 상품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이 같은 현상은 구체적인 수치로 증명된다. 요우커를 대상으로 한 관광 상품을 살펴보면, 전체의 93.8%가 경복궁을 관광 코스에 포함했다. 그다음으로 청와대(93.5%), 청계천(43.8%)을 찾는 비율이 높았다. 이에 비해 일본인 대상 관광 상품은 창덕궁(35.8%), 북촌한옥마을(29.7%), 청와대(28.0%) 순으로 많았고, 경복궁은 16.7%에 불과했다. 반대로 요우커 대상 관광 상품에서 일본인이 많이 찾는 창덕궁을 포함한 경우는 0.7%에 불과했다.

이 조사는 작년 8~9월 기준으로 중국·일본·대만·태국·홍콩·필리핀 등 아시아 주요 6개국의 서울 관광 상품을 전수(全數)조사한 것으로, 국가별 관광객들의 전형적인 서울 관광 패턴이 드러난다.

다른 국가들의 경우 필리핀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경복궁(92.6%)을 찾는 비율이 가장 높았고 대만은 청계천(92.3%)을, 태국과 홍콩은 각각 N서울타워(86.3%)와 청와대(41.6%)를 가장 많이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 6개국의 주요 관광지는 일본을 제외하면 대체로 비슷했지만 유독 그 나라에만 인기가 있는 관광지도 있었다. 필리핀 관광객은 다른 나라 관광객은 거의 찾지 않는 조계사(26.5%) 방문 비율이 특히 높았고, 대만과 홍콩은 각각 덕수궁(16.2%)과 숭례문(17.7%)을 주요 관광지에 포함했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중국·일본인 입국자 수는 각각 392만명, 271만명으로 전체 1·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처럼 두 나라 관광객들이 찾은 주요 관광지는 사뭇 달랐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광정책과 최용훈 박사는 "재(再)방문객이 많은 일본인과 달리 중국인 관광객은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 위주로 관광 상품이 구성된다"고 말했다.

중국인과 일본인의 서울 주요 관광지 방문 비율.

지난해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지만 작년 11월부터 중국에서 싸구려 관광 상품을 규제하는 '여유법'이 시행되자 요우커를 대상으로 한 국내 관광 산업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다. 실제로 여유법 시행 직전 383개에 달했던 서울 관광 상품은 작년 11월 기준 195개로 절반이 줄었다. 하지만 '여유법' 시행이 중장기적으로 국내 관광 상품의 질(質)을 높여줌으로써 관광지로서의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여유법 시행 이전엔 1인당 평균 60만~70만원짜리 관광 상품이 대세였지만 여유법 시행 이후 90만~100만원짜리로 바뀌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해부터 중국인 대상 서울 관광 상품의 질적 성장을 꾀하기 위해 서울시가 직접 품질을 보증하는 '우수관광상품 인증제'를 본격 시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