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올해 업무보고에서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산하에 '임원 자격 기준 소위원회'를 만들어 공기업의 임원 직위별로 세부 자격 요건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동안 끊임없이 논란을 불렀던 공기업 낙하산 인사의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작년 12월 공기업을 개혁하겠다고 칼을 빼든 후에도 도로공사 사장과 한국전력·한국서부발전·석탄공사·예금보험공사·자산관리공사·기술보증기금 감사 자리에 정치권 출신을 잇따라 앉혔다. 새누리당 지구당 위원장들이 평생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금융회사 감사·사외이사로 갔고 검사 출신은 전력 회사 사외이사로 꽂혀 내려갔다. 이런 사례를 일일이 꼽아보는 것조차 이젠 지겹다.

정부는 당초 공공 기관 정상화 대책에서 낙하산 인사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낙하산 인사와 공기업 부실(不實)이나 방만 경영은 직접 관계가 없다는 궁색한 변명도 했다. 그랬던 정부가 이날 뒤늦게 낙하산 대책을 거론이나마 한 것은 공기업 개혁의 성패가 여기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공기업 임원의 자격 요건을 엄격하게 정하더라도 이를 실제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포스코·KB금융지주·KT 같은 민간 회사의 사외이사에까지 청와대가 입김을 불어넣는다는 것은 아무 비밀이 아니다. 공기업을 선거 전리품(戰利品)으로 여기는 집권 세력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공기업 임원 자격 규정은 언제라도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

정부가 굳이 공기업 임원들의 자격 요건을 만들겠다면 '권력 실세(實勢)와 가까운 사람' '집권당 공천에서 탈락했거나 공천을 받고도 낙선한 사람' '대선·총선 캠프에서 6개월 이상 근무한 사람'이라고 해두는 것이 차라리 솔직한 태도일 것이다. 지금 정부가 공기업을 개혁하겠다고 공기업 경영진과 노조를 밀어붙이고 있지만, 그 진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믿기 어려운 것도 바로 정부가 최근까지 자격 없는 사람들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 왔기 때문이다. 그런 정부에 '공기업 임원' 자격 요건을 정할 자격이 있기나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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