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현지 시각) 부실 은행이 집중돼 있는 스페인의 금융주(株)들이 하루 동안 2%가량 대폭 하락했다. 이날 유럽 단일은행감독기구(SSM)의 다니엘 누이(64·사진) 의장이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앞날이 불투명한 은행은 살려두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기관의 수장으로선 이례적으로 강하고 직설적인 발언이었다.

오는 11월 공식 출범하는 SSM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내 약 6000개 금융기관의 부실 여부를 관리 감독하는 기구이다. 프랑스 출신의 누이는 지난해 12월 초대 의장을 맡아, 감독 기준 마련과 직원 채용 등 SSM의 뼈대를 만드는 중이다. 유럽 금융기관의 운명을 쥐고 있기 때문에 재닛 옐런(68)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신임 의장, 크리스틴 라가르드(58)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함께 글로벌 금융기관의 '여제(女帝) 3인방'으로 불린다.

누이는 깐깐한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다. FT는 "누이는 가냘픈 몸매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옛 동료는 로이터 통신에 익명으로 "누이가 회의실에 들어오면 실내 온도가 2도쯤 떨어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상대의 기를 죽이는 스타일이어서 '협상의 명수'라는 평가도 받는다. 누이는 2011년 프랑스 금융감독기구 의장으로 있을 때, 구제금융으로 연명하던 프랑스·벨기에·룩셈부르크의 초대형 합작은행 덱시아를 공중분해 시켜버리기도 했다.

프랑스은행(중앙은행) 은행원의 딸로 태어난 누이는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졸업 후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은행에 입사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서 약 10년간 근무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프랑스은행에 줄곧 일하며 은행감독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금융인 남편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지만, 가장 먼저 사무실에 나와 가장 늦게 퇴근하는 일벌레이기도 하다.

누이는 남성 중심인 유럽 금융계의 '유리 천장'을 깼다는 평가도 받는다. 유럽 핵심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유럽중앙은행(ECB) 정책위원회 23명 멤버 중 여성은 단 한 명에 불과할 정도로 여성에 배타적이다. 누이도 1994년 프랑스 금융감독기구 의장이 공석이 됐을 때, 후보 1순위로 꼽혔지만, 정부가 지원한 남자 후보에 밀려난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SSM 직원 1000명을 새로 뽑으면서 여성을 우선적으로 채용하는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