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 사건' 방해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56)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리자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권은희(40·사진)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충격적인 재판 결과"라고 반발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인 ▲김 전 청장의 영장 보류 압력 여부 ▲수사 방해가 되풀이되면서 권 과장의 서울청에 항의 전화 여부 ▲서울청이 수서경찰서에 제대로 된 분석 자료를 보냈는지 여부에 대한 권 과장의 주장과 법원의 판단을 재구성해봤다.

[2012년 12월 12일…  權 "영장 보류 압력 전화 받아"]

"오전에 이미 결정… 따로 알릴 이유 없어"

권 과장은 "2012년 12월 12일 오후 3시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으로부터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보류하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법원에 따르면, 수서서 직원은 그날 오전 10시 30분쯤 검찰에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러 떠났다. 김용판 전 서울청장의 상관인 김기용 경찰청장은 ‘영장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검찰이 기각할 것’이라는 별도의 내부 보고를 받고 ‘영장 재검토’ 지시를 내렸다. 김 전 청장은 수서서 서장에게 전화로 김기용 청장의 뜻을 전달했고 서장은 오전 11시쯤 직원에게 경찰서로 돌아오라고 명령했다.

이미 오전에 경찰청장과 서울청장, 수서서장, 일선 직원이 모두 영장 신청을 보류하기로 합의가 이뤄졌고 정보도 모두 전달됐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4시간 뒤에 김용판 전 청장이 영장 보류를 지시하는 압력성 전화를 걸었다는 권 과장의 주장은 믿기 어렵다는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2012년 12월 14·17·18일…  權 "수사 계장에 전화 항의"]

"해당 시간에 통화한 내역 안 나와"

권 과장은 서울청이 계속 수사를 방해해 김병찬 서울청 수사 2계장에게 전화로 여러 차례 항의했다고 했다. 2012년 12월 14일 부하로부터 '서울청 분석팀이 국정원 여직원이 지정해주는 파일만 열어보는 식으로 분석 범위를 제한하려 한다'는 보고를 받고 김 계장과 전화로 다퉜다는 것이다.

그러나 권 과장의 통화 내용을 조사한 결과 권 과장이 주장하는 시간대에 김 계장과 통화한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권 과장은 언론 브리핑이 끝난 17일과 18일에도 김 계장에게 몇 번 전화를 했다고 말했으나 12월 16일 언론 브리핑 이후 김 계장과 권 과장이 통화했다는 자료는 나오지 않았다.

법원은 당시 권 과장 부하가 상황을 오해했다고 판단했다. 서울청 분석팀은 국정원 여직원이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특정 파일을 분석 대상에서 빼달라고 할 경우 이유가 타당하면 들어주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이 장면을 본 권 과장의 부하가 서울청 직원들이 국정원 여직원 편을 들어준다고 오해하고 권 과장에게 보고했다는 것이다.

[2012년 12월 18일…  權 "ID·닉네임 없는 자료만 보내와"]

"국정원 직원 하드에 'ID·닉네임' 담겨"

권 과장은 서울청 분석팀이 국정원 직원의 노트북 내용을 분석해놓고도 수서서가 이를 분석하지 못하도록 '껍데기 자료'만 넘겨줘 수사를 방해했다고 주장한다.

권 과장은 2012년 12월 18일 오후 7시 35분쯤 서울청으로부터 분석 결과물이 저장된 하드디스크를 받았지만 수사에 가장 중요한 아이디와 닉네임이 빠져 있었고, 같은 날 자정 가까운 시간에 직접 서울청에 항의해 아이디·닉네임이 담긴 2차 자료를 받아왔다고 했다. 권 과장은 “당시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고도 했다. 하지만 법원의 증거 조사 결과 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청이 당일 오후 7시 35분 1차로 수서서에 보내 준 하드디스크 겉면엔 ‘추출된 ID, 닉네임 목록’이 기재되어 있었다. 실제 하드디스크 내에도 자료 분석에 필요한 아이디와 닉네임이 담겨 있었다.

권 과장은 자정쯤 2차 자료를 받아와 분석에 들어갔다고 주장했지만 수서서는 두 시간 전인 오후 10시부터 이미 아이디·닉네임 자료를 가지고 분석에 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