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은 6일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서울 수서경찰서의 수사를 방해하고, 대선 사흘 전 중간 수사 결과를 허위로 발표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작년 6월 검찰이 "김 전 청장에게 대선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며 김 전 청장을 기소하자 큰 파문이 일었다. 김 전 청장은 "사실을 은폐하거나 부당하게 선거에 개입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맞섰다.

검찰이 제시한 핵심 증거는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과 서울경찰청 사이버 분석팀의 컴퓨터 분석 과정이 녹화된 CCTV 영상이었다. 재판부는 권씨 진술에 대해선 "(권씨가 수사 문제로) 서울경찰청 간부와 통화를 했다고 주장했으나 통화 내역도 없고 진술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도 명백히 어긋난다"고 했다. 권씨는 김 전 청장이 국정원 직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도 법원은 "압력을 넣은 게 아니라 법률적 문제 때문에 보류시켰다고 다른 모든 증인들이 증언하고 있고, 권씨 스스로도 영장 청구에 필요한 소명(疏明)이 부족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CCTV 영상에 서울경찰청 사이버팀 직원들이 국정원 직원의 정치 개입 증거를 찾아내고 기뻐하다가 김 전 청장의 지시로 분위기가 급변하는 장면이 담겼다고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사의 추측에 불과할 뿐 CCTV 영상 어디에도 분위기가 급변했다고 볼 객관적 장면이 없다"며 "오히려 김 전 청장이 분석 과정을 CCTV로 녹화하도록 지시하고, 분석 과정에 선관위 직원 등을 참여시켜 공정성을 갖추려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다. 김 전 청장이 대선에 개입하려 했다거나, 사실을 은폐·왜곡하려 했다는 어떠한 객관적 증거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경찰 고위 간부가 대선에 불법 개입했다는 이 사건은 작년 내내 국정원 댓글 문제와 함께 정치권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를 흔들었다. 권씨는 일각에서 무슨 '스타'처럼 떠받들어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 권씨 주장은 사실과 어긋나고, 검찰 주장도 검사의 추측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궁금한 것은 검찰이 이토록 빈약한 증거를 갖고 커다란 파장이 일 것이 분명한 중대 사건을 기소(起訴)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검찰은 통화 내역도 없는 사람과 통화했다는 주장을 핵심 증거로 내놓거나, 다른 모든 증인들과 완전히 다른 말을 하는 증인 한 명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검찰이 한 번이라도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객관적으로 검증해봤다면 이런 오류(誤謬) 정도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검찰을 이토록 무리한 기소를 하도록 만들었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2심·3심 재판이 남아 있기는 하다. 그러나 1심 재판부의 판단을 보면 검찰이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는 새로운 증거를 내놓지 못할 것이라면 재판을 더 끌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자문(自問)해봐야 할 것이다.

[사설] 그래도 북한 아이들과 주민들은 먹여야 한다
[사설] 윤진숙 경질은 대통령 수첩 인사의 예고된 결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