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엔 형제가 30년만에 처음으로 음악 영화를 내놨습니다.'인사이드 르윈(Inside Llewyn Davis)'은 이곳 저곳 떠돌며 노래하지만 사는 게 힘들기만 한 1960년대 뉴욕의 빈털터리 포크 가수 이야기입니다. 삶의 이면을 블랙 유머로 냉소하는 쌉쌀한 분위기가 영락없는 코엔 영화입니다. 지금까지의 코엔 영화에 비하면 무척 정적(靜的)이고 무자극이기도 합니다. 이번엔 유혈 살인극은 것은 물론이고 이렇다 할 극적 사건도 찾기 힘듭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르윈(오스카 아이삭)이라는 무명 싱어의 힘겨운 며칠간을 아주 '차분하게' 따라갑니다.

영화 첫 장면과 끝에서 이 친구가 쓰리 핑거 피킹으로 통기타를 뜯으며 구성지게 부르는 'Hang Me, Oh Hang Me'는 그의 삶의 주제곡이라 할 만합니다. 교수대에 올려져 인생 끝내게 된 사내가 '내 목 매달아'라고 말하는 노래라니! 그만큼 르윈의 삶이란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함께 노래하던 파트너는 자살해 버려 그에게 트라우마만 남겼습니다. 집도 돈도 없어 매일 저녁마다 이 친구 저 친구 집에 '빈대 붙어' 소파에서 쪽잠 자는 신세입니다. "지쳐 죽을 거 같네!" 라는 탄식이 그의 입에서 가끔 나옵니다.

르윈은 심지어 옛 연인 진(캐리 멀리건)의 신세도 집니다. 진은 임신을 했다며 르윈에게 낙태 수술비를 내놓으라고도 합니다. 그녀는 지금 다른 포크 싱어인 짐(저스틴 팀버레이크)과 듀엣으로 노래하고 사는데 진&짐 커플의 노래는 좀더 대중성이 있어서 르윈보다 잘 나갑니다. 르윈에겐 재능이 있어 보이는데 인생이 안 풀려도 너무 안 풀립니다.

집도 차도 없어 이집 저집 소파에서 신세를 지느라 기타 가방 메고 뉴욕 거리를 떠도는 '인사이드 르윈'의 무명 포크 싱어 르윈(오스카 아이삭), 무거운 짐들이 거추장스러운데, 설상가상으로 우연히 떠맡게 된 교수님의 고양이까지 그와 함께 한다.
담배를 문채 음유시인처럼 노래하는 '인사이드 르윈'의 무명 포크가수 르윈(오스카 아이삭).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노래만 고집하는 그의 삶은 힘겹기만 하다.

영화는 르윈이 가수로 일할 기회를 알아 보려고 시카고에 갔다가 돌아오기까지 며칠 간의 여정을 따라갑니다. 피터 폴 앤 메리의 '500 Miles'등 포크 명곡들이 여러 곡 울리는 영화지만, 길거리 통기타 가수의 극적 드라마를 다룬 '원스(Once)처럼 감동적인 스토리를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남녀의 '러브 라인' 따위도 없습니다. 그런 틀에 박힌 느낌들을 싹 걷어내고 삶의 민낯을 뼈있는 이야기에 담아낸게 이 영화입니다.

좀더 주의해서 보면 코엔 형제만의 독특한 상상력과 재능으로 빚어낸 퍼즐같은 장면들을 풀어 볼 수도 있습니다. 가령 영화 앞 부분에서 르윈이 낯선 사내에게 폭행당하고 교수 집에서 깨어나는 장면은 영화 끝 부분에 반복되는데, 똑같지 않고 몇 부분이 다릅니다.'어디가 왜 다른지'속에 코엔 형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겠지요.

이런 퍼즐 풀기를 영화 보는 재미로 삼을 수 있겠지만 일부 매니아들 이야기겠지요. 다행히도 이 영화를 무거움의 수렁에서 건져올리는 캐릭터가 '인사이드 르윈'에 있습니다. 르윈과 계속 함께 하는 고양이들입니다. 세 마리쯤 되는 고양이들은 이 영화의 조연쯤은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화 초반 침대에 누워 있는 르윈을 깨우는 게 한 마리 누런 고양이입니다. 신세 진 교수집에서 기르는 고양이인데 르윈이 그 집을 나설때 함께 탈출하는 바람에 한동안 데리고 다닙니다. 길에서 이 고양이를 놓치지만 또다른 고양이들을 만나고 동행합니다.

있는 듯 없는 듯, 르윈을 따라 다니는 고양이들은 곁들이로 나오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르윈의 정체성과 살아가는 태도를 암시하는 중요 캐릭터입니다. 고양이들 모습엔 고단하게 떠도는 배고픈 예술가의 삶이 투영됩니다. 처음 르윈을 따라 집을 나선 교수집 수코양이는 도중에 사라집니다. 어디로 갈지 종잡을 수 없는 르윈을 닮았죠. 얼마 뒤 르윈은 놓쳤던 고양이를 길에서 잡아 교수 집에 데려다 주지만 엉뚱한 암코양이임이 밝혀집니다. 르윈의 인생처럼 고양이들의 삶도 엎치락뒤치락 합니다.

운전을 하던 르윈이 정체모를 동물을 치는 사고 때 '피해자'도 흰색 고양이입니다. 다리를 다친 게 분명한데도 일어나 혼자 숲으로 뛰어가는 흰색 고양이를 르윈이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다치고 깨쳐도 절망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듯한 모습입니다. 고생 끝에 뉴욕으로 돌아온 르윈은 교수의 그 수코양이를 다시 만나는데 고양이 이름이 '율리시스'라는 걸 처음 알게 됩니다. 어려움 끝에 뉴욕으로 귀환한 르윈의 모습이란 20여년 간 갖은 고생 끝에 집으로 돌아왔다는 그리스 신화의 율리시스 같다는 암시죠.

'인사이드 르윈'에서 듀엣으로 노래하는 짐(저스틴 팀버레이크)과 진(캐리 멀리건)커플. 진은 르윈의 전 애인이다.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 세계만 고집하는 르윈과 달리 짐&진 커플은 좀더 상업성이 있는 노래를 하며 여유있는 삶을 살려고 한다.

가만히 보면 고양이라는 동물의 특성 차제가 떠돌이 가수 르윈의 캐릭터와 아주 닮았습니다. 고양이와 르윈은 모두 고결하고 거만하고 독존(獨存)적입니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사람 눈치를 보거나 사람에게 아양을 떨지 않습니다. 오로지 제가 잘 났고, 그 잘난 걸 세상이 알아 줬으면 한다는 듯 꼬리 세우고 천천히 도도하게 걷기를 좋아합니다. 세상을 대하는 르윈의 태도도 같습니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음악에 몰입하고, 자존심 강하며, 남의 간섭을 배격합니다. 노래를 마친 뒤 갈채가 쏟아져도 그 흔한 '땡큐'인사 한번 안하는 게 르윈입니다.

남에게 굽히지 않는 고양이처럼 르윈도 그렇습니다. 초대받은 교수 집에서 노래 한 번 해 달라 청하자 '너희는 누가 초대해 놓고 강의 한번 해 달라면 바로 해주나'라고 들이받습니다. 한 마디로 사교성·붙임성이 제로입니다. 길에서 떠도는 것까지도 고양이와 르윈은 닮았습니다. 르윈 스스로도 그걸 알 것입니다. 그러기에 "계집애도 아닌데 고양이를 끼고 다니다니…"라는 빈정거림을 받으면서도 어떤 동질감을 느끼는 듯 고양이와 함께 합니다. 영화 초반 르윈의 전화를 받은 대학 여직원이 '르윈이 그 고양이를 갖고 있다(Llewyn has the cat.)'는 르윈의 말을 '르윈이 그 고양이다 (Llewyn is the cat.)'로 잘못 알아 듣는 대목이 나옵니다. 르윈과 고양이가 하나라고 암시하는, 예사롭지 않은 대목입니다.

영화 속에서 르윈의 노래를 들어 본 음반 제작자의 평은 이렇습니다. "돈은 안 되겠군!" 코엔 형제의 이번 영화 역시 같은 느낌을 갖게 합니다. '표정 바뀌지 않는 주인공처럼 밋밋하게 흘러가는 노래들의 행진'이라는 비판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낮은 촉수의 카페 분위기에 묻혀, 멋진 포크 라이브를 감상하면서 삶의 아이러니를 들여다 보고 싶은 사람에게, 또한 기죽지 않는 고양이의 도도함을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모든 이에게 이 영화는 잊을 수 없는 며칠 간의 겨울 여행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