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 기업지원과장 최모(59)씨는 고용 정보 시스템에 접속했다가 무릎을 탁 쳤다. 고용 창출과 기업 활동 활성화를 위해 국가가 마련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데도 그 존재조차 몰라 신청을 하지 않은 영세 기업이 상당수라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이 지원금은 3년 안에 신청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소멸된다. 1974년부터 공무원으로 일한 최씨는 고용부 내부 사정에 훤했다.

'어차피 사라질 눈먼 돈'을 이용한 그의 새로운 '비즈니스'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같은 해 8월 최씨는 비영리 법인 '기업하기 좋은 나라 운동본부'를 세웠다. 고용 정보 시스템을 통해 지원금 수혜 대상인데도 신청을 하지 못한 기업·개인 정보를 알아냈고, 이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줬다. 여기까진 선의(善意)로 인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최씨는 지원금 신청 업무를 대행해준 뒤 30%를 '기부금' 명목으로 받았다.

사업은 번창했다. 2011년엔 옛 고용부 동료였던 노무사 명의로 회사를 설립했고, 작년엔 딸(29) 명의로 또 다른 회사를 만드는 등 모두 다섯 개의 법인을 세웠다. 직원은 300명이나 됐다. 최씨는 고용 정보 시스템에서 기업·개인 정보를 빼내 USB장치에 담아 이 회사들에 전달하는 방법으로 4800여개 기업의 지원금 신청 업무를 대행하며 수수료 30%를 챙겼다. 이 과정에서 최씨는 고용부가 관리하는 개인·기업정보 800만건을 임의로 조회하고 개인 정보 12만건을 불법 유출했다. 국가지원금 신청 업무를 대행한 것도 무자격으로 불법이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5일 이런 수법으로 국가 지원금 190억원 중 58억여원을 수수료 명목으로 챙긴 혐의(개인정보보호법·공인노무사법 위반)로 최씨와 최씨의 동생(52)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최씨의 딸, 동생(49), 조카(28), 동창 출신 목사 박모(57)씨 등 18명을 입건했다. 경찰은 "가족, 고향 후배, 동창, 옛 고용부 동료 등 혈연·학연·지연이 총동원된 범죄"라고 말했다. 최씨는 이렇게 벌어들인 58억원 중 20억원으로 50평(165㎡)짜리 호화 오피스텔 두 채를 사들였고, 나머지는 직원 인건비·경조사비·출판비 등에 썼다고 경찰은 밝혔다.

최씨는 범행 기간에 '기업하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때' '공무원 2.0시대'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등 저서를 펴냈고, 취업을 주제로 한 대학 강연이나 국토 대장정에 나서면서 '스타 공무원'으로 행세했다. 한 경제신문이 주는 '노동문화상'을 받았고, 다른 경제신문 계열 잡지로부터 '독야청청 청백리''실사구시 실학자'라는 칭찬도 받았다.

최씨는 "정보를 빼낸 것은 잘못됐다"면서도 "지인(知人)들의 사주를 받았을 뿐 개인적으로 돈을 벌려고 벌인 일이 아니다"고 했다. 5일 고용부는 "정보 열람 절차를 개선하고 공직 기강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