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社)들에서 1억건 이상 개인 정보가 유출된 후 고객들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이용한 전화 사기(보이스피싱)와 문자메시지 사기(스미싱) 범죄가 속출하고 있다. '정보 유출 사건 수사에 협조해달라'며 검찰청 직원을 사칭해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에게 계좌 번호와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불러줬다가 5100만원을 사기당한 사람도 있다. 악성코드에 감염된 컴퓨터로 카드사 피해 확인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300만원을 잃어버린 피해자도 나왔다. 범인이 주거 상황, 소득 내용, 카드 신용 한도 같은 내밀한 개인 정보까지 제시하며 상황을 꾸며대면 꼼짝없이 당하기 일쑤다.

요즘 스팸 문자는 인터넷의 대량 문자 발송 기능을 통해 순식간에 수천~수만 건씩 보낼 수 있다. 정부는 스팸으로 의심되는 문자를 보낸 전화 회선은 통신 회사에 연락해 차단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차단이 이뤄지기까지 1주일 가까이 걸린다. 경찰이 범인을 추적한다 해도 수시로 전화 회선을 바꿔가며 추적을 따돌리는 범죄 조직을 따라잡기가 힘들다. 정부가 통신사들과 협조해 실시간으로 스팸 전화 회선을 차단해 추가 피해를 막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중국 공안이 2년 전 랴오닝 등지의 전화 사기 조직원 235명을 체포했더니 그중 한국 국적이 51명이나 됐다. 연간 2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사이버 도박이나 사이버 음란물 유통도 중국에 서버를 둔 범죄 조직의 소행인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중국 사이엔 수사 공조, 범죄인 인도 조약이 맺어져 있지만 사이버 도박이나 전화·문자메시지 사기 사건은 살인 같은 강력 범죄에 우선순위가 밀리고 있다. 전자·사이버 범죄에 대처하는 한·중 정부 간 별도의 협조 시스템을 강구해봐야 한다.

전화·문자메시지 사기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극성을 부리고 있다. 금융기관을 비롯, 고객 정보를 수집하는 사이트 거의 대부분에서 워낙 많은 개인 정보가 유출됐기 때문이다. 2012년 인터넷진흥원 개인정보침해센터에 신상 정보가 도용되거나 훼손·침해됐다고 신고한 사례는 16만6800건이었다. 6년 전인 2007년 2만5965건의 6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피해를 호소하는 국민이 크게 늘고 있는데도 정부는 각자 알아서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부는 개인 정보 보호 업무를 안전행정부(개인정보보호법)와 미래창조과학부(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법)가 각각 따로 관장하고 있고, 관련 부서도 안전행정부(개인정보보호과)·미래창조과학부(정보보호정책과) 외에 방송통신위원회(개인정보보호윤리과)까지 합쳐 삼원화(三元化)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담당 공무원 조직만 커졌을 뿐 국민 피해는 줄기는커녕 되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검찰·경찰, 금융 당국, 한국소비자원, 통신사들을 총동원한 범(汎)정부 시스템을 가동해 개인 신상 정보를 갖고 장난치는 범죄 조직과 전쟁을 치르는 각오로 이번 사태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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