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제44차 WEF(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다보스 포럼)장. 23일(현지 시각) 등장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의 고국인 프랑스 언론은 "아프간하운드(개의 종류) 머리 같다"며 혹평했다.

라가르드가 원래 이런 스타일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콘(패션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프랑스 재무장관 시절부터 망토, 부츠, 화려한 스카프, 커다란 액세서리 등에 샤넬 재킷, 에르메스 가방 등을 걸쳐 세련된 감각을 뽐냈다. 과감한 원색 정장도 즐겨 입으며 자국 패션 산업의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180㎝에 달하는 큰 키에 수중발레 국가대표 출신의 탄탄한 몸매, 구릿빛 피부, 반짝이는 은빛 머리도 그가 패션 아이콘이 되는 데 한몫 거들었다.

미국 연예잡지 '배너티페어'는 2011년 '세계 베스트 드레서 여성'에 라가르드와 카를라 브루니 당시 프랑스 대통령 부인, 캐서린 영국 세손빈을 선정하기도 했다.

화려한 스카프를 두른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지난 2011년 프랑스 재무장관 시절 파리에서 회의를 마친 뒤 걸어나오고 있다(위). 오른쪽은 수수한 원피스 차림의 라가르드가 작년 10월 미국 워싱턴DC의 조지워싱턴대에서 강연하는 모습.

그런 라가르드가 2011년 7월 IMF 수장이 되자 전 세계 언론은 멋쟁이 여성 지도자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IMF 본부가 있는 미국 워싱턴DC로 간 라가르드의 옷차림이 '무난한 디자인의 무채색 정장'으로 바뀐 것이다.

그의 스타일 변신은 워싱턴DC 특유의 보수적인 성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헤이즐 클라크 파슨스디자인스쿨 교수는 "동부에서는 패션과 외양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가벼운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나라와 언론의 지나친 관심도 부담이 됐다. IMF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에서는 "수천만원짜리 에르메스 백을 들고 다니는 IMF 총재에 위화감을 느낀다"는 지적이 나왔다. BBC방송은 "라가르드가 스카프 없이 나타나는 날은 중요한 발표가 있는 날"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부담 때문에 튀지 않는 무난한 스타일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라가르드의 스타일 변신은 여성스럽고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라가르드는 프랑스 재무장관 시절 직권남용 혐의로 조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 2008년 재벌 베르나르 타피와 국영은행 크레디 리요네 은행의 분쟁에 개입한 혐의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2012년만 해도 프랑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정치인으로 꼽혔던 라가르드가 지금은 자국 언론에서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며 "패션만으로 여론을 바꿀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