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전국적으로 열풍이다. 정치인 저자가 책값 명목으로 돈을 받는 행사다. 작년 정기국회 때는 국회의원들이 주로 열었고, 해가 바뀌자 6·4 지방선거에 나가려는 예비 후보자들이 앞다퉈 열고 있다. 행사장마다 돈 봉투를 든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시장에 출마하려는 한 여권 실세가 지난 17일 연 출판기념회엔 2만명 이상이 몰렸다고 스스로 밝혔다. 20일 야권의 서울 지역 현역 구청장 출판기념회엔 3500여명이 참석했다. 작년 9월 정기국회 초 국회의 한 특별위원회 위원장 출판기념회에선 주요 기업인·금융인 등 수천명이 눈도장 찍으려고 줄 서 있는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다.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 모금 창구로 변질됐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가벼운 탈법 수준을 훨씬 넘어 '신종 뇌물 창구'라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을(乙)이 갑(甲)에게 돈 봉투의 두께로 성의를 표하고, 갑은 의정(議政)이나 행정(行政)을 통해 되갚는 부패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 후원금은 내역 공개, 영수증 발행, 선관위 신고 및 회계 검사 등이 법적으로 의무화되어 있다. 그러나 출판기념회는 '선거일 90일 전까지'라는 조항만 지키면 아무런 법적 제한이 없다. 내역 공개도 없고 지출 용도 제한도 없다. 정치권의 지하경제이자 사실상 뇌물 징수다. 출판기념회로 10억원 넘게 모은 국회의원이 있다는 소문도 돈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2006~2007년경부터다. 2004년 초 정치자금법이 개정돼 후원금 연간 모금 한도가 절반으로 축소되고 규제도 대폭 강화된 이후 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를 통해 줄어든 돈을 채우기 시작했다. 작년에 국회 내에서 출판기념회를 연 국회의원만 56명이었다. 국회 바깥 장소에서 한 사람까지 치면 100명이 훨씬 넘을 것이라고 한다.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다른 사람들의 기념회는 아예 통계도 없다. 선관위도 단속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지난 14일 새해 기자회견에서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법을 회피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으로 정비하겠다"고 했다. 앞서 민주당은 출판기념회를 통해 모금하는 돈을 통제할 수 있도록 정치자금법을 개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그 후에도 출판기념회는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이제 교육감 선거 출마 희망자들까지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다. 이러다간 출판기념회와 관련한 큰 추문이 터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정말 의지가 있다면 출판기념회를 선거관리위원회 등 외부에 맡기면 된다. 2월 임시국회에서 당장 처리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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