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用 '한국형 토플' 네 번 보고 끝…371억원 날려

정부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간 371억원을 들여 개발한 고등학생용 '국가영어능력시험(한국형 토플)'을 올해부터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15일 "올해부터 고교생이 치르는 '한국형 토플' 2~3급 시험을 폐지한다"며 "연간 시험 치르는 데 드는 예산 30억원도 삭감했다"고 밝혔다. 이날 교육부 발표로 '한국형 토플'은 1급(성인용) 시험만 유지되고, 고교생용 시험은 2012년 도입 후 단 4차례(연 2회)만 실시하고 사라지게 됐다.

'한국형 토플'은 학생들에게 실용영어를 가르치고 해외 영어시험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2012년부터 시행해온 영어평가 시스템이다. 말하기·듣기·쓰기·읽기 등 4개 영역으로 구성돼 있으며, 성인이 보는 1급과 고교생이 보는 2급(기초학술영어), 3급(실용영어)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형 토플을 대학 입시에 반영하고, 장기적으로는 수능 영어시험을 한국형 토플로 대체(代替)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2013학년도 대입 수시모집에서 7개 대학이, 2014학년도 대입에서는 36개 대학이 '한국형 토플' 성적을 반영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8월 교육부는 "한국형 토플 시험을 준비하느라 중고생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한국형 토플을 수능과 연계하지 않겠다"고 정책 방향을 틀었다.

지금까지 고교생용 '한국형 토플' 문제를 개발하고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들어간 예산은 371억원에 이른다. 지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간에 걸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한국형 토플'을 연구해 개발했으며 수천개 영어 문제를 개발해 놓은 상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는 "학교 현장에 실용영어 학습 분위기가 그나마 무르익었는데, 한국형 토플 무효화로 다시 예전의 입시 영어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큰 피해자다. 지난 2008년 정부의 '실용영어' 방침에 따라 영어 공부를 했던 학생들은 이날 정부 발표에 대해 "역시 정부 정책은 믿을 게 못 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엄청난 예산만 날린 데다, 학생들에게는 영어 교육과 시험에 대해 잘못된 메시지만 주고 끝난 실패한 정책으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