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을 맡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한국전력기술(한전기술)은 작년 6월 원전 부품 시험 성적서 위조 사건이 터지자 도덕적 책임을 진다며 각각 1급 이상 간부 179명과 69명 전원의 일괄 사표를 받았다. 그러나 한수원과 한전기술이 지난 1일 임직원 인사를 마무리한 결과 실제 사표가 수리된 간부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전기술 간부들은 JS전선이 만든 불량 케이블을 성능 시험 업체인 새한티이피가 시험 성적서를 위조해 합격품으로 둔갑시킨 것을 알고도 정상 제품으로 승인해줬다. 한수원 간부들은 시험 성적서가 위조된 사실을 알면서도 불량 케이블을 납품받았다. 이 케이블은 핵연료 과열 등으로 비상사태가 일어났을 때 신속한 안전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원자로에 신호를 보내는 핵심 부품이다. 검찰은 작년에 원전 비리로 97명을 기소하면서 이들 가운데 품질 보증서 위조 관련자가 57명으로 가장 많았다고 발표했다. 서류가 위조된 부품은 케이블을 비롯, 무려 47개에 달했다. 뇌물 비리가 한수원-한전기술-납품업체 간 3각(角) 거래에 그만큼 넓고 깊게 퍼져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수원과 한전기술 경영진은 외부 감사 팀을 동원해서라도 검찰 수사로 드러나지 않은 비리를 더 찾아내고, 대대적 조직 개편과 인사 조치로 뇌물에 찌든 조직 문화를 뜯어고쳤어야 한다. 그러나 두 회사는 수사가 끝나자마자 외부 인사 몇 명을 영입한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간부 전원에게 사표를 되돌려줬다. 6개월 전의 일괄 사표가 국민의 비난을 피하려고 벌인 깜짝쇼였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한수원 1급 간부들은 2012년 11월에도 성능 시험을 거치지 않은 부품을 납품받은 사실이 드러나 전원이 사표를 냈으나 역시 한 명도 수리되지 않았다.

국내 원전의 반경(半徑) 30㎞ 안에 487만명이 살고 있다. 우리는 원전 사고가 한번 났다 하면 피해자가 한꺼번에 수천·수만 명 발생하는 것을 후쿠시마 원전에서 목격했다. 국민 모두가 이런 불안감을 안고 살고 있는데 정작 원전을 맡고 있는 한수원과 한전기술은 과거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 이런 판에 정부가 2035년까지 원전 18기를 더 짓겠다고 나오니 누가 믿고 따르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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