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해치지 않는 옷이잖아요. 재미있고 따뜻하고 값싸고 편하죠. 이보다 좋은 옷이 또 있나요?" 스타일리스트 정윤기가 인조 모피를 두고 한 말이다. 그의 말처럼 최근 '옷 좀 입는다'는 사람들은 더는 모피를 고르면서 진짜니 가짜니를 따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가짜를 더 선호하기 시작했다. 옷 한 벌 만들자고 동물을 살육할 필요도 없고, 남의 털로 부(富)를 과시하지도 않으니, 오히려 더 근사한 옷이라는 것. 인조 모피가 어느덧 '새로운 열풍'의 주역이 된 것이다.

유행의 시작은 사실 미미했다. 2008년 환경보호론자인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McCartney)는 그해 컬렉션 전체를 합성섬유로 만든 인조 모피와 인조 가죽으로 완성했다. 이때만 해도 '소수의 몸짓'으로만 보였다. 그 후 마크 제이콥스(Jacobs)·드리스 반 노튼(Noten) 등이 인조 모피로 컬렉션을 채우면서 '가짜 털'은 어느덧 '세련됨'의 상징이 되기 시작했다. 2011년부턴 인조 모피의 판매량이 가파른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Jolie)가 가방을 살 때마다 동물보호단체에 전화해 '제조 과정에서 동물 학대가 이뤄지지는 않았나'를 묻는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고, 여기에 '모피 애호가'로 불렸던 린제이 로한(Lohan)·미샤 바튼(Barton) 등이 인조 모피를 입기 시작하면서 인조 모피는 어느덧 대세(大勢)가 됐다. 최근엔 '포에버21' '톱숍' 같은 세계적인 패스트패션 회사에서도 모피 옷을 더는 팔지 않는다.

인조 모피를 입은 여성의 모습(왼쪽). 할리우드 스타 미샤 바튼(오른쪽)도 인조 모피 애호가다.

인조 모피를 부르는 명칭도 점점 바뀌고 있다. 한때는 '페이크 퍼(Fake fur·진짜인 것처럼 보이는 가짜 털)', '포 퍼(Faux fur·가짜 모피)'라고 불렸으나 최근엔 '에코 퍼(Eco fur·환경을 생각하는 모피)' '펀 퍼(Fun fur·재미있는 모피)'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디자이너 양유나씨는 "진짜 모피는 다루기도 어려워 디자인에도 제약이 많지만, 인조 모피는 염색부터 처리까지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 오히려 더 많은 영감을 준다"고 했다. '하이포(High faux)'라는 명칭도 나왔다. 값비싼 천연 소재로 만든 가짜 모피라는 뜻. 다시 말해, 가짜지만, 최고급이다. '가짜=싸구려'라는 공식을 깨는 이름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엔 럭셔리 브랜드에서도 인조 모피를 적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진짜 모피로 만든 옷조차 '가짜'스럽게 처리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명품 회사 마케터는 "예전엔 최상의 털을 써서 윤기가 잘잘 흐르도록 처리한 옷이 큰 인기를 누렸지만, 최근엔 이보단 진짜 털도 살짝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 나도록 처리한 옷이 더 인기"라면서 "환경보호 움직임이 거세지고 졸부를 경멸하는 시선이 생기면서, 갈수록 진짜 모피도 너무 풍성하고 화려하지 않게 디자인하는 게 요즘 트렌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