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만여명으로 추정되는 국내 치매 환자는 2024년 100만명을 넘어선다. 현재 10조3000억원인 치매의 사회적 비용은 30년 뒤엔 78조원으로 불어난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과거에 치매는 일부의 문제였다. 평균수명이 70세를 훌쩍 넘은 지금, 치매는 '우리의 정해진 미래'다. 본지는 지난 5월 2일부터 〈치매, 이길 수 있는 전쟁〉 기획 시리즈를 통해 치매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짚어 알렸고, 올바른 예방·검진·치료법을 소개했다. 마지막 순서로 앞으로의 과제에 관한 좌담을 마련했다. 김기웅 국립중앙치매센터장, 임을기 보건복지부 노인정책과장, 치매 아내를 5년간 돌보고 있는 서소광(70)씨,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인지능력 재활 교육 봉사 활동을 해온 신현경(23·이화여대 심리학과4)씨가 참석했다.

신현경(치매환자 재활 봉사자), 서소광(치매 아내 5년째 돌보는 남편), 김기웅(국립중앙치매센터장), 임을기(보건복지부 노인정책과장).

―우리 사회에는 치매에 대한 많은 오해와 편견이 있었다. 이번 기획은 치매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의 재고(再考)에 중점을 뒀다.

서소광 "치료도 간병도 잘한 모범적인 사례로 인터뷰까지 했지만, 사실 지난 5년간 가까운 사람에게도 아내가 치매라는 걸 말하지 않았다. 부담이 됐다. 우리 부부 기사가 나가니까 아는 사람들한테 깜짝 놀랐다며 전화가 쏟아졌다. 처음엔 '왜 말 안 했느냐'로 시작했던 사람들이 마지막은 '나도 사실 치매가 걱정된다'고 하더라.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지만 '치매' 하면 일단은 숨기는 게 우선인 것 같다."

김기웅 "이제 치매를 '운 나쁜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볼 때가 됐다. 그게 치매를 걱정하는 어르신들에게도 큰 힘이 된다.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문제니까 모두가 터놓고 치매를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치매를 숨기려다 치매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공유가 안 되는 게 치매 극복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치매의 전조증상(前兆症狀) 등 명확한 정보가 없어 혼란스럽다는 원성도 많다.

신현경 "외할머니가 가벼운 치매이신데, 증상 초기에 체중이 갑자기 확 줄어든 적이 있다. 이후에 치매 진단을 받고 약을 드실 때에도 그게 치매 전조증상 중 하나였다는 건 몰랐었다. 그때 치료를 시작했다면 지금 상태가 더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임을기 "워낙 여러 가지 증상이 있다 보니 헷갈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치매 대백과식으로 정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치매가 완전히 정복된 병이 아닌 만큼 전문가마다 치매 예방이나 치료에서 강조하는 부분이 각자 다르다. 암(癌)은 상황마다 세부적인 지침이 있는데 치매는 그게 없다. 외국도 치매에 대한 지침이 나온 게 길어야 15년 정도 됐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적합한 임상 지침을 만들어야 하는데, 수많은 연구 결과가 종합돼야 해서 쉬운 일은 아니다.

―정작 의료진이나 간병인이 치매를 잘 모른다는데?

"1993년 치매 치료약이 처음 나왔지만 부작용이 심했고, 1999년에야 제대로 된 약이 나왔다. 의학은 기본적으로 치료가 가능해야 배우는 학문이다. 이전에 의대에서 공부했던 분들은 상대적으로 치매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항상 외래를 봐야 하는 의사들의 특성상 재교육도 쉽지 않다. 그러나 2000년 이후에 의학 공부를 한 이들이 곧 의료진의 중추가 된다.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병보다 치매는 간병인의 손이 더 많이 가지만 그동안 그에 따른 교육이 부족했다. 내년부터는 요양보호사 교육 등에 치매 환자 간호법과 인지 자각 교육 등이 보강될 것이다. 치매 환자 돌봄을 위한 전문 교육을 이수하면 일본의 사례처럼 수가(酬價)를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하는 등의 인센티브 제도도 검토 중이다."

―'치매는 불치병'이라는 고정관념이 워낙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어머니가 치매셨다. 가족력(歷)이 있으니까 걱정이 돼서 60세 되던 해부터 치매 공부를 좀 했다. 치매 안 걸리려고 시작한 공부였다. 그전까지는 치매 걸리면 다 끝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살펴보니까 아니더라. 덕분에 아내가 치매 진단을 받고도 절망하지 않고 열심히 치료에 집중해서 지금도 잘 살고 있다."

"불치병이라는 인식 때문에 흔히 치매와 함께 오는 병을 외면하는 것도 문제다. 대표적인 게 우울증이다. 치매에 걸린 한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진단을 해보니 우울증이 심했다. 그런데 다 치매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방치하고 있었다. 우울증 약을 처방해드렸는데 다음 달에 와서 '대체 어떤 약이길래 이렇게 머리가 맑아지고 힘도 나느냐'고 묻더라. 치매 완치는 아직이지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의학적 기술은 충분히 발달해 있다."

―'치매(癡�)'를 다른 말로 바꾸자는 제안도 많다.

"치매 증상이 있는 혼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는데, 그분들 앞에서 '치매'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교육받았다. 치매라는 말을 꺼리고,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치매는 더럽고 추한 것'이라는 느낌이 공유되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이 개선될 수 있다면 치매를 다른 말로 대체하는 것도 긍정적인 것 같다."

"아예 치매를 '뇌 장애' 같은 말로 바꿨으면 좋겠다. 치매라는 말이 가진 부정적인 뉘앙스도 문제지만, 장애등급을 받으면 그만큼 정부 보조를 받을 수 있으니까 치매 가족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다.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못 받는 '쌩쌩한 치매 환자' 때문에 드는 가족의 수고나 돈이 요양원에 보낼 만큼 안 좋아졌을 때보다 훨씬 크다. 옛날에 비해 장애인에 대한 태도나 인식이 많이 좋아진 만큼, 치매도 장애의 하나로 인정하면 그 단어에 대한 편견도 줄어들 것이다."

―치매 교육의 필요성도 이번 기획에서 많이 강조했는데 더 개선돼야 할 점이라면….

"봉사 활동을 하면서 치매 환자와 함께 사는 가족들이 치매를 잘 몰라 고통받고, 정작 교육을 받고 싶은 사람도 못 받는다는 걸 알게 됐다. 교육을 해줄 수 있는 곳이 대부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여는데 그때는 치매 가족들도 일을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정작 가장 교육이 절실한 치매 가족들이 교육을 못 받는 것이 현실이다. 치매 환자 곁에서 떨어질 수가 없기 때문에 교육받을 시간이 없다. 또 치매는 스스로 발견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이상함을 느껴 병원에 가보라고 해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는 치매 가족은 물론이고 좀 더 많은 사람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자신이 치매인지 모르는 '숨어있는 치매 환자'는 어떻게 찾아야 하나.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지역별로 치매에 대한 복지에서 편차가 크다. 중앙예산과 별도로, 지방자치단체장이 얼마나 치매에 관심이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지자체장도 주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우선순위가 달라질 것이다. 치매에 대한 홍보와 교육이 계속되면 변화가 생길 것이다."

"내가 사는 용인시에서 상태가 조금 좋은 치매 가족들을 모아서 놀이동산에 보내준 적이 있다. 아내가 방금 한 일도 잊는데 거기서 거꾸로 도는 열차를 탄 건 지금도 '끔찍했다'면서 기억을 하더라. 아내가 잊지 않는 그런 기억을 갖게 해줘서 참 고마운데 이후엔 그런 기회가 거의 없었다. 지자체가 치매 가족들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대담 참가자들은 "사람들의 관심만큼 정부가 치매 극복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도 영국도 프랑스도 대통령 또는 총리가 국가 치매 계획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가 보도자료를 배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