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새벽 1시, 국립중앙치매센터의 치매상담콜센터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치매에 걸린 87세 시아버지를 모시고 있다는 며느리였다. 그는 작년 말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치매를 앓아 5년 넘게 간병을 도맡았는데, 시아버지마저 치매 진단을 받아 하늘이 무너질 것 같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세상에 다시 없을 효부(孝婦)'라고 칭찬하지만 정작 자신은 죽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새벽 4시까지 이어진 전화는 "그래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고맙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끝났다.

지난 1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치매상담콜센터의 직원들이 치매 환자와 가족들의 전화를 받고 있다. 문을 연 지 한 달이 채 안 됐지만 벌써 1600통 넘는 상담 전화가 걸려왔다.

한 달 동안 시범 운영을 거쳐 지난 1일 정식으로 문을 연 치매상담콜센터엔 26일까지 1600통이 넘는 전화가 걸려왔다. 부모님의 치매 증세를 걱정하는 20대, 약 먹기를 거부하는 치매 어머니를 설득하는 방법을 묻는 50대, 자신의 증세가 치매인지 묻는 80대까지 다양한 문의 전화가 쏟아졌다. 새벽 2시에 "어머니가 또 칼을 들고 방에 들어와 '훔쳐간 내 돈 내놔'라고 위협하고 있다"는 전화가 걸려와 "몰래 어머니 방 서랍에 돈을 갖다 놓고 돈을 찾은 척하라"고 상담해준 사례도 있다.

이미 호주와 스웨덴, 영국 등에서 효과를 본 치매상담콜센터의 장점은 '익명성'이다. 상담원은 전화를 건 사람에게 인적사항을 묻지 않는다. 이 때문에 병원을 찾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쉽게 치매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또 아직도 치매를 부끄러워하는 노인과, 치매 가족들에게 '위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최근 치매 증세가 심해진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셨다는 한 중년 남성은 상담원이 "어려운 결정 하셨다"고 말을 건네자 "다들 나를 불효자로 보는 것 같아 힘들었다. 지지해줘서 고맙다"며 울먹였다. 최경자 치매상담팀장은 "콜센터가 고통받는 치매 환자와 가족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치매상담콜센터엔 사회복지사, 간호사 자격증과 평균 4년의 현장 경험을 가진 상담원 36명이 3교대로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이들은 상담에 앞서 2개월간 치매 전문 교육도 290시간 받았다. 상담은 치매에 관한 정보를 묻는 '정보 상담'과 치매 환자 간병에 관한 '돌봄 상담'으로 나뉜다.

치매상담콜센터 전화번호는 국번 없이 1899-9988이다. '18세의 기억을 99세까지, 99세까지 88하게 살자'는 뜻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