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경찰이 지난 6월부터 국가보조금 관련 비리(非理)에 대한 집중 단속에 나서 3349명을 입건하고 이 중 127명을 구속 기소했다. 이들이 부당하게 지급받거나 유용한 국가보조금은 1700억원에 이른다. 복지 분야 부정 수급액이 405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고용·농수축산·연구개발·문화·체육·관광 등 보조금이 나가는 거의 모든 분야에 부정과 비리가 퍼져 있었다.

적발된 어린이집 원장들은 보육 교사와 원생을 거짓으로 등록하고 어린이 보육 관련 보조금과 특별활동비 94억원을 가로챘다. 어느 직업훈련원 원장은 북한 이탈 주민들로부터 1인당 50만~200만원을 받고 가짜 수료증을 발급해줘 이들이 정부의 직업훈련 장려금 6억원을 타낼 수 있도록 했다. 해외 농업 개발을 하겠다며 서류를 위조해 정부 기금에서 72억원을 융자받은 뒤 회사 대표가 생활비와 사업 자금으로 써버린 경우도 있다. 보조금 횡령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이 보조금 신청자로부터 금품을 받고 적극적으로 비리·부정을 저지른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국가보조금은 지난해 기준 46조4900억원으로 전체 국가 예산의 14%를 차지한다. 이렇게 규모가 엄청난데도 종류가 수백 가지나 되고 사업마다 지원 요건이 다른 데다 내용이 복잡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오래전부터 "정부 돈은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이번에 검찰과 경찰의 단속에 걸린 사례는 물 위로 드러난 빙산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감사원 감사나 정부·지자체의 자체 감사로 밝혀낸 보조금 비리 사건도 수없이 많다.

정부는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세청 세무조사를 대기업에서 중견·중소기업으로 넓히고 있다. 봉급생활자들에 대해서도 과거 연말정산 자료를 다시 뒤져 5년 전에 덜 낸 세금까지 받아내겠다고 하고 있다. "세금을 박박 긁어모은다"는 말이 나올 만큼 세수(稅收)를 확보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면서 정부 예산 집행에 대한 검증(檢證) 시스템은 제대로 갖추지 않아 어렵게 거둬들인 세금이 누구 호주머니로 빠져나가는지도 모르게 줄줄 새고 있다.

예산만 늘린다고 해서 '복지 시대'가 열리지는 않는다. 복지 예산과 국가보조금이 엉뚱하게 새 나가는 구멍을 찾아내 바로잡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돈을 써도 효과를 낼 수 없다. 정부가 세수를 더 늘리려 해도 납세자들이 반발해 복지 시대가 열리기도 전에 침몰할 수 있다. 복지 혜택이 절실하게 필요한 계층의 불만이 커져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정부는 보조금 비리·부정에 대한 단속은 물론, 국민 세금이 꼭 필요한 곳에 정확히 쓰이는지 확인할 수 있는 예산 집행·검증 시스템부터 서둘러 보완하고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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