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프리토리아 이성훈 특파원

6일(현지 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넬슨 만델라(95) 전 대통령 자택 주변은 춤을 추는 인파로 뒤덮였다. 이들이 두 손을 높이 들고 구슬프게 내는 소리는 울음인지, 노래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일부는 부부젤라(남아공의 전통 나팔)를 불기도 했다. 죽음을 마치 축제처럼 맞이하는 이 지역 특유의 의식(儀式)이다.

자택 앞에는 오전부터 추모객들이 가져다 놓은 꽃들이 쌓여 있었다. 아들 손을 잡고 온 오보안(42)씨는 "만델라가 가는 마지막 모습을 아이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변에는 '잘 가요 만델라' '사랑해요'라고 적은 종이들을 벽에 붙이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는 당신을 사랑해요, 타타 마디바!'라는 글이 쓰여 있는 쪽지도 있었다. 현지어 타타(Tata)는 '아버지'를 뜻한다.

1990년 만델라가 27년간의 수감 생활을 끝내고 역사적 연설을 했던 요하네스버그 시청사 주변에도 추모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의 고향 쿠누에서도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오열했다. 이들은 "마디바(존경받는 어른·만델라의 존칭)"를 외치며 남아공 국기를 흔들었다. 현지 신문 '시티 프레스'는 만델라 서거 소식이 전해진 지난 5일 밤부터 수만명의 인파가 거리로 몰려나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 만타시(23)는 "만델라 할아버지가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슬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만델라가 없는 남아공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1984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데스먼드 투투 주교는 현지 언론에 발표한 기도문을 통해 "청렴과 화해, 헌신의 리더십을 펼쳤던 만델라를 잃은 데 대해 마음속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밝혔다.

만델라를 떠나보낸 슬픔에는 흑백(黑白) 인종의 차이는 없었다. 추모 물결 속에는 백인들도 다수 섞여 있었다. 영국계 이주민 자손인 미셸(43)은 "만델라는 흑인과 백인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며 "진정한 인류애를 보여준 인물"이라고 말했다. 백인들이 주로 모여 사는 남부 케이프타운에서도 시민들이 거리에서 추모 행진을 했다.

인종차별로 멍들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사회를 변화시켰던 세 주역이 1994년 5월 케이프타운 의사당 앞에 나란히 섰다. 넬슨 만델라(가운데) 당시 대통령 당선자 양옆으로 퇴임하는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왼쪽) 대통령과 타보 음베키 부통령 지명자가 손을 맞잡고 있다(맨 위 사진).

만델라의 부재(不在)에도 남아공에 큰 동요는 없는 상황이다. 지난 6월부터 만델라가 사실상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면서, 그의 죽음에 어느 정도 대비해 왔기 때문이다. 현지 교민 임원빈(42)씨는 "만델라가 남아공 국민에게 갖는 의미는 매우 크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기 때문에 별다른 혼란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최근 경제 위기로 흑인 하층민의 생활고가 심화하고 있고, 만델라를 의식해 참고 있던 이들이 갑자기 불만을 터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흑인 밀집 지역인 소웨토 등에서는 약탈 등 범죄가 빈번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부정부패가 만연한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극에 달해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