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원주캠퍼스 경영학부 교수로 29년간 재직하다 지난 8월 말 정년 퇴임한 안영갑(65)씨의 현재 직함은 동양자수박물관장이다. 은퇴 후 곧바로 강원도 강릉으로 달려갔다. 강릉에 그가 2년 전 설립한 '동양자수박물관'이 있다. 500㎡ 규모 공간에 한국·중국·일본의 수준 높은 자수 작품 650여점이 주제별로 전시돼 있다. 안 관장이 26년간 전국을 돌며 수집한 작품들이다.

1987년 서울 인사동의 한 고미술관에서 자수에 매료됐다. 연노란색 비단에 감색 꽃과 형형색색의 새들을 수놓은 작품. "그걸 보는 순간 군 복무 시절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향수가 강하게 느껴졌지요." 6남매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나 그는 어머니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랐다고 했다. 어머니는 자수에 조예가 깊었다. "자수에는 규방에서 가족의 화목을 기원하면서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수를 놓은 어머니들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강원도 강릉시 죽헌길 동양자수박물관에서 만난 안영갑 관장은 “지난 26년간 열정으로 전국을 뛰어다닌 덕에 은퇴와 함께 제2의 삶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 관장은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주말에는 서울·광주 등 대도시의 고미술관을 돌아다녔고, 방학 동안에는 배낭을 메고 전국 중소 도시를 뛰어다녔다. 자수는 수집상들이 가정집에서 구해다가 고미술관에 판매해 세상에 나온다. "26년 동안 떠돌다 보니 전국 고미술관 주인 중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어떤 분들은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숨겨뒀다가 저에게만 연락해 오기도 하지요(웃음)."

주변에서는 자수 수집에 몰두하느라 대학교수 일에 소홀한 것 아니냐고 묻지만, 안 관장은 예술에 대한 자신의 취미를 살려 10년 전 문화 예술 기관의 마케팅을 연구하는 '문화마케팅' 강의를 개설했다. 마케팅 학술 동아리·창업 동아리도 직접 만들었다.

2005년엔 그동안 모은 자수들로 첫 전시회를 열었다. 강릉에서 개최한 전시회는 전국에서 모여든 전문가들로부터 수준 높은 작품을 망라했다는 평을 받았다. 안 관장은 이때부터 박물관 개관을 준비해왔다. "강릉시가 2010년 폐교된 초등학교에 문화예술회관을 세우기로 하면서 해결됐죠. 인건비 등 운영비 일부도 정부에서 지원해줬습니다."

결국 은퇴를 2년여 앞둔 2011년 1월 박물관을 개관했다. 안 관장은 요즘 은퇴를 앞둔 동료 교수들의 상담역까지 하느라 바쁘다. "열정만 갖고는 안 되죠. 체력과 금전적 여유가 있는 현직에 있을 때 은퇴 준비를 미리 시작하라고 귀띔합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