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동북아 안보 지형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역내 바다와 상공에 미국·중국·일본의 군사력이 집결하면서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일의 방공식별구역 '무력화 시도'와 중국의 '기정사실화 시도'가 맞붙으면서 '물리적 충돌'로 비화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것이다.

29일 미국과 일본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에 초계기·정찰기·조기경보기·전투기 10여대를 한꺼번에 진입시키고, 중국이 이에 대응해 수호이 30과 젠(殲) 11 전투기 등 주력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킨 것은 이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기우(杞憂)가 아님을 보여준다. 양측이 물리적 충돌을 의도치 않더라도, 역내에 전례 없이 운집한 군사 역량이 마주치면서 우발적으로 불꽃이 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29일 "최근 20년간 역내에 이처럼 많은 군사력이 운집한 것은 처음"이라며 "3국의 항모급이 상호 감시 활동을 하거나 군사력 시위를 하다가 좁은 해협에서 부딪칠 수도 있다"고 했다.

◇전례 없이 밀집한 미·중·일 군사력

미국과 일본은 중국에 "방공식별구역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이 이에 응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이에 미·일은 B52 전략폭격기를 시작으로 이날 P3 초계기, EP3 정찰기, E767 조기경보기, F15 전투기 등을 잇따라 이 구역에 보내 중국의 방공구역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무시 전략을 펴고 있다.

동아시아에 배치된 미·중·일 전력 분석 그래픽

중국은 초기 B52 진입 때 예상과 달리 조용한 반응을 보여 자국 내에서 비판을 받았지만, 이날은 즉각적으로 수호이 30과 젠 11 등 중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응대했다. "앞으로는 미·일이 방공식별구역을 휘젓고 다니는 것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경고다. 이 같은 두 세력의 시도가 반복될수록 물리적인 충돌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바다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현재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인근엔 항공모함 및 준항모급 함정 4척이 집결해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 항모 조지워싱턴호는 오키나와 인근에서 일본 자위대와 합동훈련을 했고, 미 항모 니미츠호는 필리핀 근처 남중국해에 진을 치고 있다. 배수량 1만8000t인 일본의 준항모급 호위함 '이세(伊勢)'호도 필리핀에 도착했다. 중국의 항모 랴오닝(遼寧)함도 28일 대만해협을 통과해 남중국해에 진입한 뒤 훈련에 돌입했다.

중국 랴오닝함이 대만해협을 통과할 때 미·일은 공중과 물밑에서 합동으로 선단을 추적하며 견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키나와 가데나(嘉手納) 미군 기지에서 발진한 P3C 초계기와 RC135 정찰기, 항모 워싱턴호의 FA18 전투기 등은 랴오닝함의 항로를 추적했다.

◇우발적 충돌, 확전으로 비화할 수도

워싱턴포스트(WP)는 "방공식별구역 문제로 당장 미·일과 중국이 먼저 무력 공격을 할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서로를 견제하고 있지만 실제 충돌을 벌이기에는 양측 모두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중국은 최근 급격한 군사력 확장을 이뤘지만 아직까지는 미국의 군사력에 한참 뒤져 있다. 올해 국방 예산도 1140억달러로 미국(6270억달러)의 5분의 1 수준이다. 당장 미국과 정면 승부를 벌이기에는 부담이 큰 상황이다. 10여년간 이어진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으로 극도의 '전쟁 피로감'에 시달리는 미국 입장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군사 충돌은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하지만 본부의 이런 '이성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군사력이 집결해 있는 현장에서는 언제든지 우발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우발적 불꽃이 각국 국민 감정을 자극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국제전략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미 과거에 동·남중국해에서 미·중이 실제로 물리적 충돌 일보 직전까지 간 사례들도 있다.

지난 6월 동중국해 해상에서 중국 해양감시선 5001호가 순찰 활동을 하던 중 미국 해군 소속 음향조사선과 일시 대치하는 일이 발생했었다. 당시 중국 측은 "미 선박이 간첩 활동을 하고 있다"며 위협을 가했었다.

2009년에는 대(對)잠수함 작전 중이던 미 군함 임페커블호를 중국 해군 함정 5척이 에워싸고 항해를 방해하며 거의 교전 직전 상황까지 갔었다. 2001년에는 미 해군 EP3 에어리스 정찰기가 남중국해 공해 상공에서 첩보 활동을 벌이자 중국이 F8 전투기를 보내 공중 충돌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