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동북아 금융허브(중심지)'로 만들겠다던 정부의 호언장담(豪言壯談)이 부끄럽게 됐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우리나라를 홍콩·싱가포르와 어깨를 겨루는 아시아 3대 금융허브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 50대 자산운용사의 지역본부를 하나도 유치하지 못했다. 오히려 메릴린치와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이 서울에서 철수한 데 이어 ING생명과 아비바생명도 한국 사업을 접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다른 나라에 있던 지역본부를 끌어오기는커녕 국내에 있던 외국 금융회사들마저 한국을 떠나는 형편이다.

국내 은행과 증권·보험회사를 아시아 대표 회사로 키워 낸다는 계획도 빈말이 됐다. 한국은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금융시장 성숙도 순위도 2003년 23위에서 올해 81위로 추락했다. 서울 여의도의 불 꺼진 국제금융센터(IFC) 빌딩은 금융허브 정책의 파탄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IFC 건물 세 개 동(棟) 중 최고층인 55층짜리 3호 빌딩은 준공 후 1년이 다 되도록 외국 회사가 하나도 입주하지 않아 건물 전체가 텅텅 비어 있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금융회사들이 조직을 축소하며 긴축 경영으로 돌아서 상황이 더 어려워졌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한국을 동북아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던 계획 자체가 아무런 실현 수단도 없는 허망한 말잔치였다는 데 근본 원인이 있다. 서울과 부산 가운데 한 곳을 금융허브로 육성하겠다 해도 될까 말까 한 마당에 판을 두 곳 모두에 벌였으니 이도 저도 아닌 꼴이 되고 말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정책도 오락가락해 산업은행을 민영화해 대형 투자은행으로 키워 낸다는 계획은 이미 오래전 백지화돼 버렸다.

이대로 가면 동북아 금융허브는 허망한 꿈이었다고 기록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금융산업을 이렇게 방치하면 한국 경제의 매력이 반감(半減)될 수밖에 없고, 우리 산업이 세계로 뻗어가는 것을 뒷받침하지도 못하게 된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의 실천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그 실패 요인을 철저히 분석해 앞으로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 자료로라도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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