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3일 경북 영천시 시골의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한 한 냉동 창고. 대구지검 포항지청 수사관들이 이곳을 덮쳤다. 냉동 창고에는 가로 50×세로 30㎝ 크기 나무 상자 100여개가 있었고, 그 안에는 부위별로 해체된 밍크고래 고기가 25㎏씩 들어 있었다. 위판 가격으로 따지면 1억원 정도에 이른다. 모두 불법 포획한 고래였다.

지난달 경남 남해군 미조항 부근에서 그물에 걸려 잡힌 밍크고래를 육지로 옮기는 모습. 이런 고래들은 합법적으로 거래된다. 최근엔 점조직 형태의 불법 포경단도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사법 당국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대구지검 포항지청은 최근 밍크고래 포획·유통 조직 19명을 검거해 선주와 운반책, 유통상 등 5명을 구속 기소하고 12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한편, 달아난 2명을 기소 중지했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돌던 불법 고래 포획의 단면이 드러났다. 이 사건을 보면 불법 고래 포획은 선주·포수·육해상 운반책·유통책 등이 철저한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검찰은 이들 외에도 불법 고래 포획 조직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수사를 담당한 포항지청 이기영 검사는 17일 "이들은 철저히 역할을 분담해 불법 고래 포획에 가담했다"며 "포획선·해체선·운반선으로 나눠 구룡포 앞바다에서 밍크고래를 최소 10마리 불법 포획·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붙잡힌 일당은 작살을 던지기 좋도록 배의 앞머리에 넓은 공간을 확보해 놓고, 포수(砲手)가 붙잡고 버틸 수 있는 '가드레일'을 설치해 놓았다. 작살포를 배에 설치하면 곧바로 적발되기 때문에 요즘의 불법 고래잡이에선 모두 숙련된 포수가 직접 작살을 던진다.

작살을 맞은 고래가 피를 많이 흘려 실혈사(失血死)하면 바로 등장하는 것이 해체선이다. 고래를 배 위로 끌어 올려 해체용 칼로 해체한 뒤 보통 20㎏ 단위로 포장해 양파망에 넣은 뒤 부표를 매달아 바닷속에 던져둔다. 이어 어선으로 위장한 운반선이 부표에 매달아 놓은 고래고기를 찾아 육상으로 옮긴다.

포항해양경찰서 형사계 김건남 반장은 "불법 포획한 고래 고기는 주로 고무보트를 이용해 한밤중에 이송했지만, 최근 고무보트가 주요 단속 대상이 되자 운반선을 어선으로 바꾸는 추세"라고 말했다.

불법 고래잡이에 사용된 작살촉.

검경에 따르면 고래 불법 포획은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번져 있다. 검찰은 "그물에 걸려 숨진 고래 등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고래는 한 해 90마리 정도에 불과한데, 시중에서 유통되는 고래 고기의 양은 상당수에 달한다"고 말했다. 검경은 동해안 일대에 고래잡이에 동원되는 배가 15척가량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불법 포획은 갈수록 은밀해지고 점조직화돼 검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검찰에 따르면 "제보를 받고 바다로 나가면 잡은 고래를 바다에 던져 버린 뒤 갑판을 씻어 증거를 없앤다"며 "불법 포경 업자들은 사법 당국에 적발될 경우에 대비해 변호사 비용 및 가족 생계비를 별도로 적립해 놓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런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에 대담하게 불법 포경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배 이름도 수시로 바꿔 단속에 대비한다고 한다.

또 기대 수익이 상당하다는 점도 불법 포획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다. '바다의 로또'라 불리우는 밍크고래는 1.5t짜리가 2000만원 이상 수익이 난다. 가담자 1인당 300만원이 돌아간다.

대구지검 포항지청 권광현 부장검사는 "불법 포경은 엄중하게 처벌하고 재범 방지 차원에서 범죄 수익 환수에도 중점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