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서 태어났으면 어머니께서 여전히 살아 계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거기서 태어난 건 그에 맞는 사명(使命)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북한 반(反)체제 법조인의 손자가 한국에서 법조인의 꿈을 키워갈 수 있게 됐다. 7일 발표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임철(25)씨는 '출신 성분'이 나빠 어려움에 빠진 북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법조계 고위직에 있던 할아버지가 김일성 체제에 반대하다, 온 가족이 정치범 수용소가 있는 함북 아오지로 추방됐다. 아홉 살 때 아버지가 탈북했고, 6개월 뒤 어머니도 병으로 세상을 떠나 '소년 가장'이 된 임씨는 1998년 할머니·여동생과 함께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었다. 2001년 마침내 한국에 들어와 아버지를 찾았다.

중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넘긴 임씨는 수재(秀才)였다. 2003년 서울 백암고에 진학한 그는 처음 반에서 24등이었던 성적을 졸업 땐 전교 3등으로 끌어올렸다. 2006년 고려대 법대에 입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했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큰 난관이었다. 임씨는 "꿈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내가 법조인이 되는 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탈북자 전체를 위한 일이라 생각해 이를 악물었다"고 말했다. 임씨는 "아직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법에 무지한 탈북자들을 위해 법률 상담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8일 서울 신림동 서울대학교 법대‘정의의 종’앞에서 탈북자 출신으로는 최초로 서울대 로스쿨에 입학하게 된 예비 법조인 이세진(왼쪽)씨와 임철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서울대 로스쿨은 8일 10명의 특별전형 합격자 중 탈북자 출신 학생 2명을 최초로 선발했다고 밝혔다. 2011년과 올해 3월 경북대·전북대·서강대 로스쿨에 탈북자 출신이 입학한 경우가 있었지만 서울대 로스쿨 합격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씨와 함께 서울대 로스쿨에 합격한 이세진(27·가명)씨는 북한의 '꽃제비'였다. 어릴 적 함북 회령시에서 홀어머니·할머니와 함께 살던 그는 어머니가 식량을 찾아 중국으로 떠나자 반(半)고아가 돼 떠돌이로 살았다. 그가 두만강을 건넌 건 13세이던 1999년이었다. 2001년 중국 공안에 적발돼 북송됐을 때는 눈앞이 캄캄했다고 했다. 다시 중국으로 탈출하길 수차례, 2003년 한국에 입국했고 꿈꾸던 '자유'를 만났다.

"한번 자유를 맛봤고, 거기에 중독돼 버렸습니다. 다시 돌이킬 수 없었고 자유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씨는 "나 혼자 잘 살려고 힘겹게 한국까지 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로스쿨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부 시절 고려대 경제학과에서 공부했고, 통일에 대비해 북한 노동력과 통일법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탈북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한국으로 와 법을 지키고 살라고 하면 당황한다"면서 "입을 옷이 없어 남한 사람들이 입던 안 맞는 옷을 그대로 입는 격"이라고도 했다. 그는 "아직도 북한에서 원치 않는 삶을 사는 북한 주민들 및 통일을 위해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법조인의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로스쿨 조홍식 교무부학장은 "우리도 처음엔 탈북자 학생들이 좋은 법조인이 될 수 있는지 우려한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면접 과정에서 그들이 보여준 건강한 가치관, 꿈을 실현하려 하는 진지한 자세를 보고 모두 감동했다"고 말했다. 로스쿨은 매년 장애인과 국가유공자, 기초생활수급권자 등을 대상으로 한 특별전형을 운영해왔지만 서울대는 올해 처음 탈북자를 뽑았다.

인터뷰 말미에 임씨는 "통일 강사로 전국 중·고교를 돌아다닐 때 자기에게 이익이 안 되면 움직이지 않는 한국 사람을 보고 실망하기도 했다"며 "통일이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꼭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래, 그때가 되면 우리가 남한과 북한을 잇는 다리가 되지 않겠니?"라고 맞장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