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유산 수술을 받은 여성과 집도 의사를 처벌하는 ‘낙태죄’를 악용, 여성을 협박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고 8일 한국일보가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한국여성민우회에 접수된 관련 상담 건수는 올해 들어 10건으로 지난해(3건)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이와 관련, 민우회 관계자는 신문에 “인공유산으로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해 협박을 받고도 숨기는 여성들이 많아 드러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큰 폭의 증가”라고 설명했다. 협박의 이유는 대부분 ‘관계 유지’와 ‘금전 요구’였다고 한다.

한 가지 사례로 신문은 지난해 인공유산을 한 A(여·29)의 이야기를 전했다. A씨는 결혼을 앞뒀던 남자친구 B(27)씨의 못된 술버릇, 폭언 등을 참지 못해 헤어질 결심을 하고 인공유산을 했다가, C씨로부터 낙태죄로 고소당했다. 법원은 시술을 한 의사에게 징역 ·자격정지 1년에 집행유예 1년을, A씨에게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낙태방조죄로 함께 기소됐던 B씨는 낙태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남성이 여성의 임신 유지를 어렵게 하더라도, 남성이 낙태에 동의하지 않으면 처벌받지 않는 현행법에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7일 여성민우회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주최로 서울 서교동 ‘인권중심 사람’에서 열린 ‘낙태죄, 법 개정을 위한 포럼’에서, 정슬아 민우회 활동가는 “낙태의 원인을 제공한 남성을 함께 처벌하는 등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낙태를 예외적으로 허용한 모자보건법상 '배우자 동의' 항목 때문에 여성들이 출산을 강요당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고 한다. 모자보건법은 ▲유전적 질환이나 강간, 근친에 의한 임신 ▲임신이 산모의 건강을 해칠 경우 등에 한해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낙태를 허용한다. 이와 관련, 김정혜 공감 객원연구원은 신문에 “남성이 임신 출산 양육의 책임과 부담을 전혀 공유하지 않으면서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때문에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배은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신문에 "여성의 결정에 의한 임신 중단이 범죄화돼 있는 상황에서 배우자 동의 조항은 여성과 의사에 대한 남성의 협박 수단이 되기도 한다"면서 "여성이 결정의 주체가 되고 태아의 생부와 의무적으로 협의과정을 거치게 하는 등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