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KT에 대한 수사에 나서 본사와 일부 임직원 자택에 대한 압수 수색이 본격화되면서 이석채 회장이 결국 사의(辭意)를 표명했다. 이 회장은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임직원의 고통이 이어지고 회사가 마비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는 없었다"고 했다. 타의(他意)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고별사(告別辭)다.

이 회장의 사퇴는 5년 전 남중수 전(前) 사장이 중도 퇴진한 것과 판박이로 닮았다. 남 전 사장은 2008년 연임에 성공했다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1년도 버티지 못하고 검찰에 구속되면서 물러났다. 이 회장도 작년에 연임해 임기를 1년 반 정도 남겨놓은 상황에서 검찰이 강도 높은 수사에 나섰다.

KT는 2002년 민영화된 후 정부 소유 주식이 단 한 주도 남아있지 않은 민간 기업이다. 정부와 KT의 관계는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KT 지분 8.65%를 소유한 최대 주주라는 것 정도다. 포스코와 KB금융지주도 KT와 사정이 비슷하다. 포스코처럼 수십 년 전에 민영화된 기업도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당연한 일처럼 최고경영진 교체 소동을 겪어왔다.

이 기업들의 경영진은 대부분 전(前) 정권과 맺은 인연을 통해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다. 지난 정권이 꽂아 놓은 사람들이 정권이 바뀐 뒤에도 그 기업에서 출발해 입신(立身)한 사람인 양 버티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선거 공신(功臣)이라는 이유로, 혹은 학연·지연이란 끈을 동원해 회장·사장 자리에 오른 경영인들은 정통성이 떨어지다 보니 과감한 경영 혁신을 하지 못하고 노조나 직원들의 환심을 사는 데만 급급했다. 이들이 스스로 진퇴(進退)를 결정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다가도 검찰·국세청 같은 권력기관이 나서면 곧바로 두 손을 드는 것도 이런 약점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정부가 전 정권 사람을 몰아내고 새로 심은 경영진도 5년 뒤에는 똑같은 일을 겪게 될 것이다. 통신·철강·금융 같은 국가 기간산업 분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의 지배 구조가 이렇게 흔들리다 보면 기업 경영은 속으로 멍이 들게 되고 결국 그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민영화된 거대 기업에서 5년마다 되풀이되는 한국형 인사 파동(波動)을 일거에 해소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인사 원칙은 지켜야 한다. 정권이 이 기업들에 자기 사람을 심고 싶더라도 경영 능력이 최고이냐 아니냐로 사람을 골라야 한다. 현재의 경영진을 바꿀 때는 객관적 경영 평가를 제시하면서 진퇴 의사를 물어야 한다. 실적이 탁월하다면 임기를 채우고 연임하는 선례(先例)를 만들 필요도 있다. 그러지 않는다면 국민은 정권이 이 기업들을 선거의 전리품(戰利品)으로 여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설] 세계 정보 전쟁 속 어떤 국정원 개혁도 마다해선 안 돼
[사설] 지방대 살리려면 대기업이 지방대 출신 많이 뽑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