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429호실. '6·25전쟁의 영웅' 백선엽(93) 장군은 벽에 붙은 포스터를 보며 상념에 잠겨 있었다. 6·25전쟁 당시 군인들을 독려하기 위해 만든 이 포스터 아래에는 '레디 투 파이트, 투나잇?(Ready to fight, tonight?)'이란 영어 문구와 함께 'Kachi kapsida(같이 갑시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백 장군 옆에 총을 든 사람은 제임스 A 밴 플리트 장군(1892~1992). 6·25 전쟁 때 2년간 미 8군 사령관을 지낸 그는 이승만 전(前) 대통령으로부터 '한국군의 아버지'라는 칭송을 받았다. 6·25전쟁 때 1사단장,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백 장군은 밴 플리트 장군과 전장(戰場)을 누비며 깊은 우애를 나눴다.

잠시 후 파란 눈의 노(老)신사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밴 플리트 장군의 외손자인 조셉 매크리스천 2세(71)였다. 백 장군은 그를 보자마자 얼싸안았다. 한·미 동맹 60주년을 맞아 '밴 플리트가(家)'를 대표해 한국을 찾은 그에게 백 장군이 처음 건넨 말은 "자네 배고프지? 나랑 점심 먹어야지(Are you hungry? Have a lunch with me)"였다.

3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6·25전쟁 영웅’백선엽(왼쪽) 장군이 전쟁 때 우애를 나눈 밴 플리트 당시 미 8군 사령관의 외손자인 조셉 매크리스천 2세에게 당시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백 장군이 뜬금없이 밥 얘기를 꺼낸 데에는 사연이 있다. 밴 플리트 장군은 백 장군을 각별히 아꼈다. 훗날 회고록에서 백 장군에 대해 "아주 특별하고 존경할 만한 최상의 사령관"이라고 쓸 정도였다. 그는 수시로 아이스박스에 아이스크림·샌드위치 등을 담아 백 장군에게 건넸다. '밴 플리트식(式)' 애정표현이었다. 수십만 대군을 이끄는 백 장군이 '행여나 배를 곯고 다니는 건 아닌가' 하는 노파심에서였다. 밴 플리트 장군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플로리다에 사는 그를 문병 간 백 장군에게 그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도 "갈 때 우리 집에서 먹을 것 좀 챙겨가시게"였다.

휴전 협정이 맺어진 지 60년이 지난 시점에 대(代)를 건너뛴 만남이었지만, 이날 두 사람은 시공을 초월한 모습이었다. 매크리스천 2세가 "할아버지로부터 장군님에 대한 좋은(wonderful)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자, 백 장군은 밴 플리트 장군과 함께 찍은 사진 앨범을 꺼내 한장 한장 설명했다. 백 장군은 앨범에 사인을 해 선물했다. 답례로 매크리스천 2세가 밴 플리트 장군의 미 8군 시절 사진을 건네자 백 장군이 사진에 거수경례를 했다.

"1951년 적은 도망가기 바빴지요."(매크리스천) "하지만 우리는 통일을 이루지 못했어요."(백장군) "당신은 승리자입니다. 지금 한국을 보세요. 강한 나라, 강한 민주주의, 강한 경제를 이룩한 한국을…."

백 장군은 6·25전쟁에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실종된 밴 플리트 장군의 아들, 제임스 밴 플리트 2세 대위에 대한 얘기도 꺼냈다. 제임스 밴 플리트 2세 대위는 1952년 4월 4일 새벽 B-26기를 타고 군산기지를 출발해 북한 평양 부근 폭격에 나섰다가 실종됐다. "밴 플리트 장군은 2군단 재창설식에 참석해 나와 미군 장성들을 부르더니 자신의 아들이 실종됐음을 알렸어요. 모두 함께 울었지요."

매크리스천 2세는 백 장군에게 그만의 리더십을 물었다. 백장군은 손을 내저으며 "내게 리더십 같은 건 없다"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매크리스천이 떠난 후 백 장군에게 다시 한 번 그만의 '리더십'을 묻자 그가 답했다. "별게 있나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