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抗命)이 또 다른 항명을 불렀다?

21일 국정감사장에서 검사장과 지청장의 정면 충돌로 검찰을 사상 최악의 위기로 몰아넣은 이번 사건의 '씨앗'은 작년 말 한상대 전 총장의 퇴진을 불러온 검란(檢亂) 사태 당시 뿌려졌다고 분석하는 시각이 많다. 한 전 총장이 내부 권력 다툼에 밀려난 뒤 검찰 내분이 심해져 윤석열 지청장의 항명 사태까지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작년 11월 말 한 전 총장은 일부 특수통 간부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았다. 부당하게 수사에 개입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한 전 총장이 최재경 당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고, 특수부 검사들은 이에 반발해 똘똘 뭉쳤다. 윤 지청장은 특수부 검사들의 '대변인'을 자처하며 선두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한 전 총장은 특수부의 집단 반발에 백기 투항을 하고 사퇴했고, 이 덕분에 올해 4월 채동욱 전 총장은 후임 총장이 됐다.

특수통인 채 전 총장이 수장이 되자 특수부 검사들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중수부가 해체된 뒤 남아 있던 중수부 인력은 대부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로 그대로 옮아갔다.

채 전 총장은 특히 자신의 첫 수사인 국정원 댓글 사건의 특별수사팀장으로 윤석열 지청장을 발탁했다. 사건 성격은 '공안' 사건이었으나 특별수사팀에 특수부 검사들을 대거 배치했다. 올해 5월 말 윤 지청장이 이끄는 수사팀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적용을 놓고 황교안 법무 장관과 일부 공안 검사와 심각한 갈등을 벌였다. 일부 언론에서 "황 장관이 수사를 가로막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수사팀이 언론 플레이로 사건을 몰아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수사팀은 끝내 원 전 원장에 대해 선거법을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 수사팀의 든든한 배후는 바로 채 전 총장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채 전 총장과 윤 지청장은 작년 말 한 전 총장의 퇴진 때부터 한배를 타고 검찰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다"면서도 "반면 검찰 내부에선 질시도 있었다"고 했다.

검찰이 댓글 사건에 대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자 야당은 기다렸다는 듯 수사 결과를 '호재'로 삼았다.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현 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촛불 집회를 열었다.

그러자 여당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회의록 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공안 검사들 사이에선 "국정원 사건을 미숙하게 처리하면서 정치권과 나라 전체가 민생과는 무관한 소모적 공방전을 벌이게 됐다"는 푸념이 나왔다.

지난달 혼외자(婚外子) 사건으로 채 전 총장이 물러나자 윤 지청장과 특별수사팀은 크게 위축됐다. 검찰 내에선 채 전 총장의 호위 무사를 자처한 김윤상 전 대검 감찰과장보다 오히려 윤 지청장이 채 전 총장과 가깝다는 말이 나왔다. 윤 지청장 등이 한직을 전전하다 결국 검찰을 떠날 것이라는 루머도 돌았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 국정원 트위터 사건이 벌어졌다. 검찰 관계자는 "윤 지청장이 절차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수사하게 된 데는, 채 전 총장 보호막이 사라진 것과 자신을 비롯한 일부 검사의 위기감도 한 배경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