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 때 장티푸스로 청력(聽力)을 잃은 화가는 평생 '소리 없는 세계'를 십자가처럼 지고 살았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사조(不死鳥)를 그린 '태양을 먹은 새'(1968)는 장애에 굴하지 않고 화업(畵業)을 계속하리라 결심한 화가의 자화상이다. 운보(雲甫) 김기창(1913~2001) 탄생 백주년 기념전 '예수와 귀먹은 양'이 17일 서울 부암동 서울 미술관에서 개막한다.

'예수의 생애' 연작 11년 만에 공개

땋은 머리에 붉은 댕기를 드리운 처녀가 방 안에 앉아 물레질을 한다. 상서로운 구름이 방을 감싸더니 선녀가 나타나 이른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가복음)

이 그림 '수태고지'는 운보의 대표작 '예수의 생애'(1952~1953) 연작 중 첫 번째 작품. 이주헌 서울미술관장은 "왼쪽에 대천사 가브리엘이, 오른쪽에 성모마리아가 앉아있는 서구 전통 도상(圖像)을 따랐지만 서양에서 동정녀의 상징인 백합과 투명한 물병을 물레로 바꿔놓고, 천사를 선녀로 치환하는 등 철저히 '한국화'했다"고 설명했다.

위의 큰 사진은 운보의 1968년작‘태양을 먹은 새’. 아래 작은 사진은 1952~1953년 그린‘예수의 일생’연작 중 일부. 왼쪽부터‘수태고지’‘아기 예수의 탄생’‘십자가에 못 박힘’.

6·25 전쟁 중이던 1952년, 피란지인 군산에서 미군들에게 그림을 그려주며 생계를 잇던 운보. 식민지 치하에서 벗어나자마자 전쟁을 겪는 우리 민족의 비극이 예수의 수난(受難)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그는 '예수'를 도포 입고 갓 쓴 조선의 '선비'로 재해석했다. 예수가 태어나고, 세례 받고, 신의 아들로 추앙받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고, 부활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 연작은 궁핍한 전란(戰亂) 중의 것임에도, 색이 맑고 우아하다. 이주헌 관장은 "운보는 미군에게 그림 한 점 그려주고 고작 2달러 50센트를 받았지만, 이 그림에만은 싸구려 재료를 쓸 수 없어 일본에서 어렵게 구해 온 고급 재료로 그렸다"고 말했다. 운보의 아내 우향(雨鄕) 박래현(1921~1976)은 생전 "전쟁의 불안과 슬픔 속에서도 운보는 이 그림을 그릴 때면 평화로웠다"고 회고했다. 이 연작은 한국 기독교의 토착화를 증명하는 그림이자, 서구 회화를 자기화한 작가적 성취를 보여주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연작 30점 전체가 일반에게 공개되는 건 지난 2002년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운보 1주기 회고전 이래 11년 만이다.

평생 장애와 싸운 '귀먹은 양'

전시에는 일본 화풍의 영향을 받은 초기작, 예술가로서 절정에 올라 화폭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았던 시기의 '바보 산수'와 '청록 산수' 등 '한국의 리히터'답게 다양한 화풍을 구사했던 운보 대표작 30여점도 나온다.

전시 제목의 '귀먹은 양'은 평생 장애와 싸운 화가에게 미술관 측이 붙인 이름이다. 운보는 개신교 모태신앙이다. 그가 사사한 이당(以堂) 김은호(1892~1979)도 개신교도다. 그러나 아끼던 막내딸이 수녀가 되자 그는 1985년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한평생 묵상하듯 그림 그렸던 운보가 생전 지녔던 성모상이 전시장 출구 쪽에 화구(畵具)와 함께 놓였다. 1980년대 말에는 박수근, 이중섭 등을 제치고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화가'로 꼽혔던 운보. 그러나 박수근 등 다른 작가에 비해 사후 관리가 뒤따르지 못해 생전 명성은 점차 옅어지고 있는 참이었다. 이번 전시는 '잊히는 운보'의 가치를 다시 점검할 수 있는 기회다.

전시장에선 실견(實見)의 감동이 관객을 기다린다. 신문 사진으로는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은근한 아름다움, 동양화 특유의 여린 색채에 소리없이 스며든 화가의 곡진한 마음이 거기에 있다. 내년 1월 19일까지. 관람료 성인 9000원, 초중고생 7000원. (02)395-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