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금융 중심가 '더 시티'에서 북쪽으로 약 2㎞쯤 떨어진 '올드 스트리트' 지하철역 부근. 4~5층 높이 낡은 벽돌 건물이 이어지는 이곳 지명은 '테크 시티(Tech City)', 일명 '유럽의 실리콘밸리'다. 올드 스트리트와 해크니로드를 중심으로 반경 3㎞ 안에 약 3000개 벤처기업이 몰려 있다. 정보통신기술(IT) 업종 외에도 금융회사,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 광고 회사, 독립 영화사 등이 섞여 있다.

영국 정부는 2010년 이곳을 '창의적 산업(creative industries) 허브'로 만들겠다며 세금 감면과 창업 자금 지원 등을 내세워 혁신 기업들을 유치했다. 그리고 지난 3년간 이곳에서만 약 3만개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샘솟고 서로 융합하는 이 지역은 유럽에서 가장 혁신적인 곳"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런던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지난해 8월 12일‘영국 음악의 향연’이라는 주제로 열린 올림픽 폐막식 장면. 영국은 올림픽 기반 시설 확충에 89억파운드(약 15조3500억원)를 투자해 일자리 창출을 비롯한 큰 경제 효과를 거뒀다.

영국 경제를 침체에서 건져낸 건 제조업과 금융업뿐만이 아니다. 스포츠 이벤트와 문화 콘텐츠, 정보통신기술(IT) 산업 등 다양한 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외국인 투자를 끌어내고 있다. 영국 정부는 이 산업들을 '창의적 산업'이라고 부르며 전담 부처인 '문화·미디어·스포츠부'를 통해 집중 육성하고 있다. 영국 국립과학기술예술재단(NESTA)은 연극·뮤지컬·올림픽·프로축구 등 문화와 스포츠 분야를 포함한 '창의적 산업'이 최근 수년간 연 4%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영국의 경제 회복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문화·스포츠로 성장 동력 확보

지난 1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을 연고지로 하는 축구클럽 아스널의 홈구장 '에미리트 스타디움'.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전에서 아스널이 이탈리아 축구팀 '나폴리'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비가 간간이 내리는 가운데 오후 6시 무렵부터 축구장 주변은 몰려든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프랑스 관광객 조셉 마뉘엘(32)은 "사업 때문에 왔다가 경기를 보러 왔다"며 "영국에서 축구를 보는 느낌은 특별하다"고 말했다. 경기장 앞 펍(영국식 맥줏집)은 테이블은 물론 홀까지 맥주잔을 든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영국은 문화·스포츠 등 콘텐츠 산업을 경기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계기로 삼았다.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운동장 건립 등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했다. 올림픽 기반 시설 확충에 투자한 금액이 89억파운드(약 15조3500억원)에 이른다. 올림픽을 통해 유치한 해외투자도 25억파운드(약 4조3100억원)에 달했다. 영국 정부는 2020년까지 올림픽으로 촉발된 경제 효과가 400억파운드(약 69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맘마미아' '미스 사이공' '라이언 킹' 등 뮤지컬이 장기 공연 중인 극장가 '웨스트엔드'는 늘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지난해 영국에서 연극·뮤지컬을 관람한 사람은 총 1400만명. 이들이 쓴 돈만 5억3000만파운드(9100억원)에 달한다.

런던‘테크 시티’의 구글 사무실 영국 런던의 벤처기업 밀집 지역‘테크 시티’에 입주해 있는 구글의 한 사무실에서 한 화가가 그라피티(벽화 낙서)를 그리고 있다.

현재 영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창의적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6~8% 정도.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만 200만명에 달한다. 영국의 주력 산업인 금융(약 10%)과 맞먹는 수준으로 성장하며 새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클러스터 전략으로 육성

영국이 창의적인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택한 것은 '클러스터(산업 단지) 전략'이다. 벤처기업들을 한곳에 모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영국 중부도시 맨체스터는 2006년 일본 전자회사 샤프가 창고로 쓰던 건물을 610만파운드(105억원)에 매입해 미디어 산업을 유치했다. '타이거 프로덕션' 등 유럽의 대표적 콘텐츠 제작업체 50여개를 모았다. 버밍엄은 구시가지 건물을 개조해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유치하는 '커스터드 팩토리' 프로젝트 등을 진행 중이다. '테크 시티' 역시 2010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나서 "창의력과 에너지, 가능성을 결합해 런던을 최고의 창조 산업 중심지로 육성하겠다"며 벤처기업을 유치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인근 '더 시티'에 있는 금융회사들도 끌어들여 창업에 필요한 돈줄을 대도록 했다. 지난달 마이크로소프트(MS)도 이곳에 벤처 창업센터를 세웠다. MS의 아넌드 크리시넌 매니저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업종의 최고의 팀과 창업하기에 '테크 시티'만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