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출판시장에서 7주 동안 베스트셀러 순위(한국출판인회의 집계 기준) 정상을 달리는 책이 있다. 판매 부수는 이미 55만부를 돌파했다. 강력한 경쟁자였던 일본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한참 따돌리고 단독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한국문학의 거장(巨匠)’으로 불리는 소설가 조정래(趙廷來·70)의 장편소설 ‘정글만리’ 1·2·3권(해냄출판사)이 그 주인공이다.

올 9월 17일 발표된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정글만리’ 1권은 ‘색채가 없는…’을 끌어내리고 1위에 올랐다. 지금은 종합순위 2위와 3위도 ‘정글만리’ 2권과 3권이 석권하고 있다. 올림픽 여자양궁 개인전처럼 금·은·동메달을 한국 선수가 독식한 것과 닮음꼴이다.

◇40~50대 남성 직장인 정서 자극…일부 대기업 단체 구입해 중국 주재원들에게 나눠줘

이 책은 중국형 사회주의의 정글인 중국을 무대로 세계 각국의 주재원들이 펼치는 '경제 전쟁'을 그리고 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으로 '민족;이라는 화두(話頭)를 붙잡아온 작가 조정래가 쓴 소설이 맞은가 싶을 정도이다. 종이책 출간에 앞서 인터넷 포털(네이버)에 108일동안에 걸쳐 연재됐다는 한계를 뚫고 베스트셀러 순위의 꼭대기까지 치고 올라갔다.

출판 전문가들은 “보통 소설 시장을 30대 여성 독자가 주도하는 것과 달리 ‘정글만리‘의 주 독자층이 40~50대 남성”이라면서 “정글만리에 등장하는 ‘전대광’ ‘하경만’ 같은 한국 경제인들의 모험담 같은 활약상이 선 굵은 이야기를 선호하는 남성 독자층의 눈을 사로잡았다”고 풀이한다.

이 책에 흐르고 있는 ‘밥벌이의 거룩함’에 대한 긍정도 이 시대 회사원들의 정서와 통한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박병원 은행연합회 회장은 최근 전경련 주최 창조경제회의에서 “‘정글만리’를 읽어보면 해외에서 기업하고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국민들이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지사나 주재원을 둔 기업들은 이 책을 단체 구매해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총수출액에서 중국이 25%를 차지하고, 중국 경제가 기침하면 한국은 감기에 걸리는 현실적 배경도 한 요인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정글만리’는 소설이면서도 일종의 자기계발서처럼 세계경제 판도 속에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할 거리를 준다”고 평가했다.

◇중국에 대한 피상적이고 안이한 인식…'중국 진출 입문서'로 과잉홍보 '눈쌀'

하지만 '정글만리'의 단점과 한계를 지적하는 반론(反論)도 만만찮다.

먼저 ‘정글만리’는 중국 문제를 비즈니스 당사자의 시각이 아니라, 외부인(손님, 구경꾼)의 시각에서 씌어져 있어, 독자가 중국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서출판 동문선의 신성대 대표는 “‘정글만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소재들이 남에게서 들은 에피소드, 즉 한중 수교 후 20년 가까이 한국 비즈니스맨 사회에서 떠돌던 낡은 얘기들”이라며 “남의 말과 글들에서 옮겨온 게 엄청 많다. 기업소설에서 빠져서는 안 될 부분인 이메일, 편지 방식에 의한 비(非) 대면(텔레) 커뮤니케이션 전개가 없다”고 꼬집었다.

비록 작가가 8번이나 중국을 여행했다고 자랑하지만 중국의 정확한 현실을 글로벌 실상을 제대로 꿰뚫어 제시하는데 한계를 보인 점도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된다.

일례로 제1권 10쪽에 등장하는, ‘중국인들은 목소리가 크다’는 얘기의 경우, 작가는 이유를 잘못 짚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중국인들은 작가의 지적대로 그들의 과시욕에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것은 중국말이 한 옥타브에서 사성(四聲)으로 발음해야 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자면 목소리가 자연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제1권 114쪽에, 비행기 일등석에서 프랑스어를 쓴다는 손님이 손가락 끝으로 스튜어디스를 불렀다거나 와인을 주문하면서 영어로 “와인!” 한 마디만 했다는 데에서는 웃음이 나온다. 영어라면 마땅히 “플리즈(please)!”가, 불어라면 “실 부 플레(s'il vous plait)!”가 자동적으로 붙어야 했다는 것이다.

세번째로 작품에 나오는 한국 사람들이 중국인과 사귀어 가는 과정, 대화 방식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을 너무 소홀했다는 것이다.

신성대 대표는 “중국인과 비즈니스 탐색전을 벌이고 합작 의사를 끌어내는 데는 오피스에서의 상담뿐 아니라 식사자리에서의 고품격 인문학적 식담(食談)이 절실함에도 작가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아마도 이에 대한 ‘심각한’ 경험이나 전문(傳聞) 없음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글만리’가 여러 한계점이 있는 상황에서 10인의 VVIP 저명인사들이 실명(實名)으로 ‘정글만리’의 판촉을 유도하고 있는 것은 이상하다는 반응이 출판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소설 '정글만리'가 젊은이들에게 중국과 관련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콘텐츠를 제시하지 않은 채 마치 중국대륙이 노다지인 양 헛바람을 불어넣은 것은 위험스럽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이 책을 단순 소설이 아니라 ‘중국진출 입문서’라도 되는 듯 홍보하는 것은 과잉이라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