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부터 올해 7월까지 보이스피싱으로 선량한 시민들이 피해를 본 금액은 4000억원에 육박한다. 당국이 손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 기간 동안 경찰이 잡아들인 보이스 피싱 범죄자만 무려 5만1600여명에 이른다. 그런데도 보이스피싱은 잦아들지 않고 오히려 고급 수법으로 진화하며 우리 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경찰은 '잡아도 잡아도 사라지지 않는' 보이스피싱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했다. 이유는 중국에 숨어 있는 '따거(大哥)'들 때문이었다. 큰형을 뜻하는 따거는 중국에서 콜센터를 운영하며 국내에 있는 피해자들을 속이고, 피해자들이 송금한 돈을 인출해 중국으로 송금하게 하는 조직의 수괴(首魁)를 뜻한다. 한 일선 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경찰관은 "지금껏 '따거'가 검거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따거가 뿌리라면 조직원들을 줄기나 잎사귀인데 조직원들을 아무리 잡아들여도 따거는 손쉽게 조직을 재건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중국 옌지(延吉)의 연립주택 촌에서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모두 따거라는 말까지 나오는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보이스피싱 조직도

따거는 어째서 잡히지 않을까. 홍길동처럼 신출귀몰해서가 아니다. 우리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중국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경찰이 따거의 인적(人的) 정보를 중국 측에 전달해 '찾아달라'고 요청하는 수밖에 없는데 국토가 광활하고 인구가 13억명인 중국에서 이들을 찾는 게 어렵다. 중국 공안이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도 사실 없다. 한 일선서 사이버팀장은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다 자국으로 흘러들어오는 판인데, 중국 공안이 굳이 수사력을 집중해 잡아낼 필요가 있겠느냐"며 "피싱 범죄라는 게 중국 자국민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아 (수사) 뒷순위로 밀리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검거 직전까지 갔던 사례가 있다. 지난 5월 서울 송파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따거' 김동원(가명·36)씨의 신원을 확인했다. 동서울 수화물센터에서 하부 조직원 박모(75)씨를 검거한 뒤 차례로 10여명의 인출책·송금책·국내 총책을 하나씩 잡아들이면서 먹이사슬 최상부에 있는 김씨의 존재를 탐지한 것이다. 2008년 김씨가 보이스피싱 인출책으로 활동한 죄로 국내에서 2년간 복역한 사실도 확인했다. 조선족인 그는 출소 이후 중국으로 넘어가 칭다오(靑島)에서 피싱 조직을 형성해 범행을 계속해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찰은 김동원 추적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수사는 진척이 없다. 중국에 있는 김씨가 2010년 이후 입국하지 않는 데다, 중국 공안에 협조 요청을 해도 묵묵부답이기 때문이다.

따거가 이른바 '학교'로 불리는 콜센터를 중국의 옌지·선양(瀋陽)·칭다오 등에 차려놓고 하부 조직원을 지휘한다는 점에서, 최근 급증하는 스미싱(smishing·문자메시지를 이용해 이용자 정보를 빼내는 수법)이나 파밍(Pharming· 컴퓨터를 악성코드에 감염시켜 사기를 치는 수법)도 조직 구성은 같다.

지난달 경기 의왕경찰서는 파밍 조직 국내 총책과 인출책 등 63명을 무더기로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따거 오모(32·조선족)씨의 인적사항을 파악했다. 중국에 있던 오씨는 지난 4월 입국, 국내 총책 임모(22)씨와 만나 인출팀을 꾸리고 대포통장 모집책을 구성하는 등 전반적으로 팀을 꾸리고 기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수사는 여기까지였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스미싱·파밍은 따거가 범죄 형태를 어떻게 할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뿐 조직 구성의 본질은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황의갑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부는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잔가지인 인출책·송금책이 아닌 중국에 있는 '따거'를 한 명이라도 잡아 경종을 울려야 한다"며 "중국 공안과 핫라인을 구축하는 등 수사 네트워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