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홍(52) 전 SK해운 고문이 국내로 강제 송환되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2년 6개월 전 SK그룹 최태원(53) 회장 형제에 대한 수사 착수 직전 중국으로 도피했던 그는 공교롭게도 최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 바로 전날 밤 압송됐다.

김씨의 '송환 드라마'는 지난 7월 31일 시작됐다. 김씨는 대만 북부 지룽(基隆)시에서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50) 부회장과 승용차를 함께 타고 가다 현지 경찰에 이민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기획체포설'이라는 의혹이 나왔다.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최 회장 형제와 짜고 김씨가 일부러 붙잡힌 게 아니냐는 추측이었다.

SK 사건 핵심 인물 간 관계도

송환이 늦어지면서 의혹은 곧 가라앉았다. 오히려 김씨가 국내 송환을 거부하는 정황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그는 대만 현지에서 저명한 변호사 4명을 고용해 '버티기'에 들어갔다. 현지인을 시켜 자신을 허위 고소하는 수법도 사용했다. 김씨가 체포된 지 사흘 만인 지난 8월 2일 '루오위저우(羅宇舟)'라는 현지인은 김씨를 사기 혐의로 타이베이(臺北)검찰청에 고소했다. 루오씨는 고소장에서 "김씨에게 2억원을 빌려줬는데 갚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루오씨는 현지 검찰이 조사에 나서자 곧바로 고소를 취소했다. 김씨는 SK그룹 측에도 체포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히려 김씨 체포는 우리 법무부의 요청을 받은 대만 사법 당국의 발 빠른 조치 덕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에 대한 조사를 마친 대만 이민서(移民署)는 지난 13일 타이베이 주재 한국대표부에 "강제 송환할 테니 임시 여행허가증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한국대표부는 현지 영사를 보내 수감 중인 김씨를 상대로 여행허가증에 지문을 찍고 날인하도록 강제 송환 절차에 나섰으나, 김씨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지문·날인을 거부했다. 그리고 다음 날 현지인을 통해 자신에 대한 고소장을 2차로 접수시켰다.

수일 전엔 김씨가 수십만 달러를 주고 카리브해 연안 중남미 국가 2곳의 여권을 발급받아 제3국으로 출국하려 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최태원 회장 변호인단은 26일 김 전 고문의 강제송환이 알려지기 직전 "김원홍씨에 대한 증인신문 없이 항소심 선고가 이루어진다면 심리미진으로 인한 불완전한 재판이 될 것"이라며 선고 연기 요청서를 담당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의 송환이 이뤄질 듯 말 듯하자 SK그룹 관계자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간다"고 했다. 회사 자금 450억여원을 실제 사용하고 범행을 기획한 김씨를 법정에 세워야 최 회장 형제의 책임이 덜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항소심은 사실 관계를 다투는 최종심으로 이대로 대법원으로 넘어가면 김씨의 역할이 묻혀버릴 수 있다는 게 SK 측 입장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언제 올지 모르는 그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당초 지난달 7일 예정됐던 최 회장 형제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이달 13일로 연기했고 다시 이번 27일로 두 차례나 미뤘다. 최 회장에 대한 구속 기한도 나흘 뒤에 만료되는 상황이었다. 법원 관계자는 "선고 전날 밤 들어올 줄 누가 알았겠느냐. 기가 막힌다"고 했다.

TV조선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