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 아들 문제가 보도된 지 일주일 만인 지난 13일 채동욱 검찰총장이 사퇴의 변을 밝힌 뒤 대검찰청 청사를 떠나고 있다.

'혼외(婚外) 아들' 파문의 장본인 채동욱(54) 검찰총장이 본지에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하면서 40쪽에 달하는 소장(訴狀)을 법원에 제출했다. 그러나 40쪽 대부분은 본지 기사를 옮긴 뒤, '이는 사실이 아니다'고 하는 '팩트(fact)' 없는 '주장'만 나열돼 있다. 그가 증거라며 제시한 내용은 혼외자 어머니로 지목된 임모(54)씨가 본지에 보낸 편지뿐이다. 소장을 읽어본 다수의 전문가들은 "기존 주장에서 진전된 것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6일 본지 보도 직후에는 "보도의 저의가 의심된다", "검찰 흔들기"라며 이 사건을 정치 쟁점화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날 입장 발표문에서는 "제 개인 신상 논란이 더 이상 정치 쟁점화되고, 국정에 부담이 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면서 "앞으로 사인(私人)으로 돌아가 법 절차에 따라 사실을 규명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청와대에 사표 수리와 법무부 감찰 중단을 우회 요청한 것으로 조속한 진상 규명이 가능한 감찰은 피하고, 소송은 소송대로 하면서 사건을 장기화하겠다는 전략 같다"고 분석했다.

본지 기사와 임씨 편지가 입증 서류?

채 총장이 본지 보도가 허위라며 제출한 입증 서류는 본지 기사 12건과 신문윤리실천요강, 임씨가 본사에 보내온 편지, 지난 9일 본사에 보낸 정정보도청구서뿐이다. 여기서 증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임씨 편지뿐이다.

유일상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소장이 조선일보 행태와 윤리성을 질타하는 언론 비판 논설문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의 주장으로 일관돼 있고 보도가 허위 사실에 근거했다는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효준 법률사무소 여민 대표변호사는 "소장을 보면 잔뜩 움츠리고 신중하게 접근한 것 같다"며 "이 사건의 소장은 4장 정도면 충분한데, 불필요한 내용을 적어 40쪽으로 늘린 느낌"이라고 말했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최소한 임씨와 이런 관계여서 이름도 도용당한 것 같다든지, 그 많은 검사 손님 중 왜 하필 자기 이름을 갖다 썼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소장에는 "대다수의 선후배 법조인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원고(채 총장)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라는 내용에 밑줄까지 그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이건 증거도 아니고 팩트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유전자 검사 짧게 언급, 임씨 인적사항 모른다?

채 총장이 정작 혼외 아들 사실 관계를 가장 빠르고 명확하게 입증해줄 수 있는 유전자 검사를 언급한 곳은 소장 맨 마지막 7줄뿐이다. 채 총장은 "유전자 감식을 위한 감정 신청을 계획하고 있다"면서도 "소 제기 시점인 현재까지 'Y씨' 모자에 대한 인적사항 및 주소 등을 파악하지 못해, 향후 확인되는 즉시 유전자 감식 감정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본지 첫 보도가 나간 6일 이후 18일 동안 임씨(Y씨) 등의 인적사항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배금자 변호사는 "임씨 때문에 이렇게 됐다면 벌써 임씨를 찾아가 펄쩍 뛰었어야 정상"이라며 "믿기 힘든 얘기이고, 입증 의지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김재형 서울대 법대 교수는 "당사자가 아무리 미국에 있어도 요즘 시대에 인적사항과 주소가 특정되지 않는다고 검사를 못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임모씨 이름으로 본사에 도착한 편지는 봉투에 수신인이 ‘조선일보 사회부장’으로 돼 있고, 글 끝에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이 육필로 적혀 있었다. 임씨는 편지에 ‘아들이 다른 사람의 자식이지만 채동욱 검찰총장의 아들인 것처럼 얘기하고 다녔다’고 썼다.

임씨의 주장처럼 임씨가 채 총장의 이름을 '무단 도용'했다면 가장 먼저 임씨에 대해 형사소송 절차를 밟는 게 순리라는 지적도 있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형사고소를 해서 무고의 위험을 감수하는 배수진을 쳐도 믿어줄까 말까인데, 이렇게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인 소송을 내는 건 대외 선전용이라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임씨가 끝내 유전자 검사에 응하지 않아 채 총장이 패소한다 해도 채 총장은 임씨 탓으로 돌리면 잃을 게 별로 없고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는 것이다.

사실 호도하며 본지 보도 비판

소장에는 사실을 호도하는 내용도 적지 않다. 채 총장은 "Y씨(임씨)가 운영한 레스토랑은 일반적인 음식점"이라며 후배 검사와 수사관의 증언을 언급했다. 하지만 임씨는 편지에서 "부산과 서울에서 주점을 운영한 것은 사실"이라고, "(채 총장이) 술 파는 가게에서 통상 있듯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일은 없었다"며 주점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채 총장은 "채모군의 초등학교 입학 시점인 2009년은 고검장 승진 때로 인사상 민감한 시기인데 학교 기록에 굳이 자신의 이름을 기재하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채군이 입학할 때 아버지 직업란에는 검사가 아닌 '과학자'로 기재되어 있었고, 실제 학교 관계자들은 검찰총장이 된 이후 최근에야 과학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밝히고 있다.

채 총장은 이날 발표문에서 "법무부 조사 결과 저의 억울함이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검찰총장으로 복귀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했다. 법무부 진상 규명 작업에 불응한다던 그가 법무부 조사로 억울함을 밝힌다는 얘기는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