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동·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테러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의 테러 억제 노력이 근본적인 한계에 다다랐다는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이슬람 극단 세력 테러와의 전쟁에 국가 역량을 쏟아부었고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테러 자체가 갈수록 진화하면서 허점을 파고들어 이 같은 미국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현지 시각) "'통제 불능의 테러 확산'이라는 미국 최대 악몽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테러의 분산화·소규모화

조시 W 부시(아들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대테러 보좌관을 지낸 케네스 와인스타인 전 법무부 차관보는 최근 헤리티지재단 강연에서 "요즘 테러 경향이 분산화(decentralization)와 소규모화(smaller scale)여서 점점 더 대처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이라크 키르쿠크 북서쪽 주택가에서 22일(현지 시각) 발생한 테러 현장에서 무장 병사들이 폭발 테러에 쓰인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이 테러로 최소 13명이 부상했다. 수도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250㎞ 떨어진 키르쿠크는 석유가 풍부해 이라크 중앙정부와 쿠르드 자치정부가 서로 관할권을 주장하며 분쟁을 벌여왔다. 이날 키르쿠크 도심 교육부 건물 근처에서도 차량 폭탄 테러가 발생, 51명이 다쳤다.

'알카에다 핵심'으로 불리던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본부는 미국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상당 부분 괴멸돼 더 이상 과거처럼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핵심'의 약화가 알카에다 몰락으로 이어진 게 아니라 일종의 '체인점 확산'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번 케냐 나이로비 쇼핑몰 테러를 주도한 소말리아 무장단체 알샤바브는 알카에다 지원을 받고 있다. 또 최근 미국 공관 테러를 모의한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AQAP), 알카에다 이라크(AQI) 및 알카에다 마그레브(AQIM) 등이 테러 조직 '체인점'의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과거 알카에다 본부만큼 대규모 조직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미 정보기관의 집중적인 감시를 받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다. 랜드연구소 앤디 리프만 연구원은 "다 죽은 줄 알았던 알카에다가 (머리가 여러 개 달린) '지하드 히드라'가 돼 돌아왔다"고 했다.

최근 전 세계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 일지와 지도

또 최근 테러 특징은 과거 9·11 때처럼 '기념비적인 대규모 테러'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와인스타인 전 차관보는 "대규모 조직원·자금을 투입해야 하고 오랜 시간 정교한 계획을 짜야 하는 테러보다 소규모 단위 공격 선호로 패턴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소규모 타격으로도 '공포 확산'이라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9·11 이후 강화된 미 정보당국의 감시망 때문에 대규모 테러는 사전 적발되는 경우가 늘어난 것도 '소규모' 테러로 지향점을 돌리는 원인이 됐다.

아랍권 국가와 협력도 난관

미국의 대테러 전쟁은 서방권뿐 아니라 아랍권 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이지만 이 역시 난관에 봉착해 있는 상태다. 과거 이집트·리비아·예멘 등의 독재 정권은 적어도 '알카에다 척결'에 있어서는 미국의 핵심 파트너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아랍의 봄'을 거치며 이 정권들이 붕괴했고,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정파들은 이 지역들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지역들이 테러 거점이 되고 있지만 미국은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