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상가는 1970년대 우리나라의 경공업 근대화를 이끌었던 곳이다. 지금도 종로3가부터 창신동에 이르는 3㎞ 청계천 상가에는 전기·전자제품, 조명, 의류·신발, 가구 등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공장과 점포가 수천 개 있다. 당시는 서울 시내 최대의 공장·상가 지역이었던 청계천 상가에 대해 '청계천에서 못 만들면 한국에서 못 만든다'는 말이 나온 시절이었다.

하지만 2013년의 청계천 상가는 서울 시내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이다. 낡은 저층 건물에 폭 3~4m의 영세 상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상가 건물 외벽은 균열이 가 있다. 청계천 조명 상가의 한 상인은 "요즘 누가 여길 오느냐"며 "청계천 강물에는 1000만명이 와도 여기까지 오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청계천 상가의 몰락은 2005년 청계천 복원 사업 이후 본격화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 추진된 청계천 복원으로 청계천 상가 일대의 도로가 1~2차선으로 줄어들고, 주차 단속이 심해지면서 발길이 끊겼다는 것이다. 2대째 을지로에서 조명 가게를 하는 안윤선(여·55)씨는 "도로는 좁고, 주차할 곳은 없고, 단속은 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했다.

청계천 일대 상가 현황 및 특징

청계천 상가가 사회적 변화에 너무 둔감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터넷 쇼핑이 급부상하는 동안 청계천 상가는 온라인으로의 움직임을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2005년 e-청계천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운영도 해보지 못하고 쇼핑몰을 닫았다. 운영 노하우가 전혀 없었던 데다 서버·운영 비용 등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세운상가가 지난 7월 처음 온라인 오픈마켓을 개장했다. 그만큼 늦었다. 게다가 쇼핑 편의성 면에서는 대형 마트와 백화점에 밀린다. 이 일대 시장은 한번 길을 잘못 들어서면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마구잡이로 난개발됐다.

하지만 청계천 상가는 단순한 영세 상인들의 밀집 지역이 아니라 배후 공장지대와 함께 있는 '산업단지'라는 점에서 방치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공구·인쇄·귀금속 등 소규모 산업은 청계천 상가에서 오랫동안 생산부터 도매·소매·배송까지 동시에 하는 원스톱(one-stop) 시스템을 만들어왔다. 사실상 생산부터 배송까지 들어가는 물류비용이 제로에 가깝다.

또한 특정 주문형 귀금속이나 공구 등은 청계천 상가에서만 구할 수 있다. 세운상가 인근에 있는 전자·기계·공구 공장은 상점과 연계돼 상품을 직접 만들어 판다. 설계도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든다. 이 때문에 제품 샘플을 만들어야 하는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는 여전히 이곳을 자주 찾는다. '청계천에서는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말은 청계천 일대에서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종로5가 인근에 있는 귀금속 상가 역시 '맞춤형 귀금속'의 메카다.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의 반지·목걸이 등을 주문·구매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특별한 결혼반지나 선물을 원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그 외에도 소형 조명 기구부터 대형 전광판까지 5000여종의 조명 기구를 판매하는 조명 거리, 안내 책자나 전단부터 작은 책까지 인쇄할 수 있는 인쇄 거리 등도 청계천 상가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소형 산업단지'다.

하지만 이 지역은 재개발이 난망(難望)한 상태다. 이 지역은 도심재정비구역으로 지정돼 민간 사업자가 토지를 모두 매입하고, 입점 상인·거주민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재개발할 수 있다. 청계천 상가 지역은 토지 매입가가 높은 데다 보상을 해줘야 하는 상인도 너무 많아서 섣불리 재개발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업자가 없다.

상인들 역시 재개발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청계천의 수많은 상가가 옮겨 갈 만한 대체 부지를 선정하는 것도 어렵다. 이미 서울시는 청계천 상가의 상인들을 송파구 문정동 가든파이브로 이주시켰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가든파이브는 외진 곳에 있어 교통도 불편하고, 상권이 전혀 형성되지 않아 이주 상인 가운데는 자살을 택한 사람도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설·경영 현대화 등을 통해 청계천 상가 일대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경민 교수는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을 사용해 '밀어붙이기식' 개발 없이도 발전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