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채동욱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지난 4월 4일 채동욱(蔡東旭·54) 검찰총장이 취임한 직후 본지에는 '채 총장의 혼외 자녀가 K초등학교에 다닌다'는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다. 사실이라면 사정기관 최고 책임자의 실정법 위반(간통)이거나 도덕성에 관한 중대 문제였다. 채 총장의 지인들과 학교, 주변 인물 등을 취재하면서 긴가민가하던 소문은 하나씩 사실로 확인됐다. 채모(11)군이 채 총장이 아버지라며 친구들에게 자랑했고, 어머니 임모(54)씨도 아이 아버지가 채 총장이라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채군은 지난달 말 미국으로 떠났고, 임씨는 취재를 거부했다. 그 결과가 6일자 A1·A2면 첫 보도(채동욱 검찰총장 婚外 아들 숨겼다)였다.

◇왜 '모르는 일'이라고 했나

임씨는 본사에 보낸 편지에서 '채 총장을 부산에서 장사할 때 손님으로 알게 된 후 서울에서 사업을 할 때도 제가 청하여 여러 번 뵙게 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또 아이 학적부에 아버지 이름을 채 총장이라고 올렸고 가게 주변은 물론 자신의 식구들에게도 아이 아버지가 채 총장이라고 말해 왔다고 했다. 본지가 취재한 결과에도 채 총장은 임씨가 운영하는 술집에 거의 매일 갈 때도 있었다고 한다. 둘의 관계는 상당히 친밀도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임씨가 채 총장 이름을 도용했고 사칭까지 하고 다녔는데도 왜 방치했는지 의문이다. 법조계 인사들은 임씨의 친정 식구들이 채 총장을 찾아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첫 보도에 대한 채 총장 반응은 "본인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채 총장은 아이 학적부에 아버지 이름이 자신으로 돼 있다는 후속 보도에도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임씨가 편지를 공개한 뒤에도 채 총장은 임씨와 관련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다.

법원장 출신 한 변호사는 "채 총장은 최소한 임씨가 편지에서 진술한 내용에 대해서는 입장 표명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씨는 편지에서 '아이가 커서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아버지를 채동욱씨로 한 것뿐' '학적부 기재가 그렇게(아버지가 채동욱으로) 된 이유로 말이 퍼져 채동욱 검사가 아버지 아니냐고 여러 번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고 적었다. K초등학교에는 검사와 판사, 변호사까지 법조인 자녀만 수십명인데 어떻게 각종 정보의 집합소인 검찰총장만 그 사실을 몰랐을까 하는 의문도 제기된다. 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첫 반응은 임씨 편지와 술집, 학교에서의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왜 임씨를 형사 고소하지 않나

가장 큰 의문은 왜 채 총장이 즉시 임씨를 형사 고소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임씨는 "아들의 아버지가 다른 채씨인데도 본인이 함부로 채동욱이라는 이름을 식구와 가게, 학적부에서 도용했다"고 말했다. 사실이라면 임씨는 채 총장과 가족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사람이다. 채 총장이 임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 수사기관은 즉각 임씨를 소환하고 강제 수사에 나설 수 있다. 아들 채군의 DNA를 채취해 채 총장 등과 대조함으로써 사실 여부를 금방 가릴 수 있다. 그런데도 채 총장은 임씨에 대한 법적 대응을 언급한 적이 없다.

임씨가 편지를 통해 채 총장을 채동욱씨라고 호칭하면서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것도 의문이다. 서울중앙지법의 중견 판사는 "임씨가 채 총장 모르게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당연히 최대 피해자인 채 총장에게 진심으로 사죄를 표명해야 하는데 그런 언급이 없었다"면서 "그런데도 채 총장이 임씨에게 민·형사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임씨 편지 교감 없었나

채군 학교 기록의 아버지난에 채동욱이란 이름이 올라 있다고 본지가 보도한 9일 채 총장은 "유전자 검사라도 할 용의가 있다"고 발표하고, 임씨는 해명성 편지를 써서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에 부쳤다. 편지를 검토한 전문가들은 "논리 정연한 글과 용어, 마치 조서(調書)를 작성하듯 편지 말미에 주민번호와 이름을 적고 지장(指章)을 찍은 것 등을 볼 때 임씨가 법률가의 조언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37분의 시차를 두고 두 신문사에서 가장 가까운 서울 광화문우체국과 마포우체국에서 같은 내용의 편지를 발송한 것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란 추측이 많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임씨가 편지를 써서 보내는데 채 총장이 어떤 식으로든 교감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