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끼리 손잡고 다니는 나라입니다. 만나서 인사하는 데만 족히 5분은 걸려요. 껴안아야지, 볼도 좌우로 서너 번 비벼야지. 정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3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이장규(67) 에티오피아 아다마과학기술대 총장은 활력이 넘쳤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쉴 새 없이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금세 저녁"이라는 그는, "얼마 전부터 우리 학교 학생들이 중동·한국 등지의 기업에서 인턴도 하고 유학도 간다"며 학교 자랑을 늘어놓았다.

서울대 전기공학과 교수를 지낸 이 총장은 2011년 정년 퇴임한 후, "아프리카 대학에서 일해보겠다"며 훌쩍 에티오피아로 떠났다. 아다마과학기술대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자동차로 2시간 반 떨어진 곳에 있다.

"학생 수만 2만7000명입니다. 이 엄청난 수의 학생 모두가 기숙사에서 생활하지요. 그런데 시설은 부족하고, 책도 없어요. 책 살 돈이 없어서 교수가 책 일부를 복사해 도서관에 갖다 두면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읽으며 공부하지요."

3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에티오피아 아다마과기대 이장규 총장은“아직 10~15년은 거뜬히 더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은퇴자들이 있다면 외국으로 눈을 돌려 제2의 인생을 열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장의 몸과 마음이 바쁜 건 이 때문이다. 총장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3년, 연장되면 최대 5년인데 그 안에 학교를 개선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그는 "내가 대학 다닐 때이던 우리나라 1960년대보다 여건이 더 안 좋다"며 "내가 떠난 뒤에 누가 총장을 맡더라도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가 멀고 먼 아프리카 땅에서 총장이 된 건, 에티오피아가 6·25 전쟁 참전국이라는 역사적 인연도 한몫을 했다. "총장이 되기 전, 인터뷰를 위해 아다마과기대를 방문해 교수들을 만나던 날, 한 젊은 교수가 내게 '우리 외할아버지가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이제 당신이 에티오피아를 위해 희생할 차례'라고 하더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신세를 진 나라에 빚을 갚아야지요."

독일인 총장에 이어 아다마과기대를 이끌게 된 이 총장은 "내가 뭔가를 가르치러 왔다기보다, 친구로서 도와주러 왔다는 걸 알리는 게 우선이었다"며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에티오피아에서 한국은 경제 성장의 모범이 되는 나라"라며 "6·25 전쟁 참전국인 에티오피아이기에 폐허가 됐던 한국이 성장한 과정을 놀라워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총장은 부임하고 나서 제일 먼저 공과대학에 손을 댔다. 신소재·반도체 등 각종 과학기술 개발에 근본이 되는 '재료공학과'를 새로 개설했고, 산업체를 끌어들이기 위해 '연구단지'를 만들었다. 그다음 한 일이 자신 같은 은퇴 교수를 한국에서 초빙해오는 일이었다. 포항공대에서 은퇴한 이해건 교수, 연세대에서 은퇴한 박홍이 교수, 서울대에서 은퇴한 이무하 교수를 영입해 각각 공대, 자연과학대, 농대 학장을 맡겼다.

은퇴한 한국인 교수뿐 아니라 은퇴 기술자와 직장인들도 한국에서 데려갔다. 대기업에서 30여년간 일하다 퇴직한 사람에게 행정담당 본부장을 맡겼다. 4일에는 연구단지에서 산학협력과 기술 이전 등에 도움을 줄 한국 시멘트 업계에서 오래 일한 기술자 2명과 함께 에티오피아로 돌아갔다. 이 총장은 "외국에서 원하는 인재(人材)는 젊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숙련된 기술과 경험을 가진 은퇴자"라며 "국내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외국으로 눈을 돌려 인생 2막을 어떻게 보낼지 찾아보는 사람들에게 에티오피아 같은 나라는 기회의 땅"이라고 말했다.